황소(黃熽)
[상세내용]
황소(黃熽)
미상~1729년(영조 5). 조선 후기 죄인.
1728년(영조 4) 후대에 진종(眞宗)으로 추존된 영조의 맏아들 효장세자(孝章世子)가 죽었다. 이에 황소(黃熽)는 1729년(영조 5)에 임금에게 상소를 올려서 왕세자의 죽음으로 종묘사직이 위태로워졌으니 신속히 후사를 세울 것을 간청하였고, 임금의 친족 중에서 효성이 지극한 인물을 왕세자로 삼을 것을 건의하였다. 그러나 상소의 내용이 불손하며, 천한 서얼이 주제넘게 종묘사직을 논의하였다 하여 임금과 신하들의 진노를 사게 되었다. 그리하여 붙잡혀 추궁을 당하였는데, 심문 도중 황소의 친족인 황옥현(黃玉鉉)‧황위(黃煒) 등이 상소문을 작성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따라 관련자들 또한 모두 체포되어 국문(鞠問)을 받았고, 그는 아홉 차례의 형신(刑訊)을 당하여 심문 도중 사망하였다.
1728년(영조 4) 후대에 진종(眞宗)으로 추존된 영조의 맏아들 효장세자(孝章世子)가 죽었다. 이에 황소(黃熽)는 1729년(영조 5)에 임금에게 상소를 올려서 왕세자의 죽음으로 종묘사직이 위태로워졌으니 신속히 후사를 세울 것을 간청하였고, 임금의 친족 중에서 효성이 지극한 인물을 왕세자로 삼을 것을 건의하였다. 그러나 상소의 내용이 불손하며, 천한 서얼이 주제넘게 종묘사직을 논의하였다 하여 임금과 신하들의 진노를 사게 되었다. 그리하여 붙잡혀 추궁을 당하였는데, 심문 도중 황소의 친족인 황옥현(黃玉鉉)‧황위(黃煒) 등이 상소문을 작성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따라 관련자들 또한 모두 체포되어 국문(鞠問)을 받았고, 그는 아홉 차례의 형신(刑訊)을 당하여 심문 도중 사망하였다.
[참고문헌]
英祖實錄
[집필자]
정병섭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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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31 | 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