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혁(李周爀)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774C8FCD601B1863X0 |
생년 | ?(미상) |
졸년 | ?(미상) |
시대 | 조선후기 |
본관 | 전주(全州) |
활동분야 | 관리 |

부 | 이이수(李頤秀) |
생부 | 이명수(李蓂秀) |

[상세내용]
이주혁(李周爀)
생졸년 미상. 조선 후기 관리.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부친은 통덕랑(通德郞) 이이수(李頤秀)이고, 생부는 이명수(李蓂秀)이다. 형은 이응혁(李應爀)이고, 동생은 이태혁(李泰爀)이다.
1777년(정조 1)에 일어난 역모에 대해 대신들은 은언군(恩彦君) 이인(李裀)을 역모의 화근으로 지목하여 지속적인 탄핵을 하였다.
1794년(정조 18)에도 이인에 대한 상소가 계속되었는데, 정조는 그를 두둔하였다. 정순왕후(貞純王后) 및 대신(臺臣)들은 정조의 하교에 대해 지속적으로 반대 의견을 제시하였는데, 이때 이주혁(李周爀)은 중론에서 벗어나 정조의 뜻에 찬동하였다. 이 일을 계기로 그 또한 대신들로부터 역적의 무리로 지목당하여 수차례 탄핵을 받았다. 그러나 임금은 탄핵을 받아들이지 않고, 그를 전라도병마절도사(全羅道兵馬節度使)에 임명하였다. 이후에도 탄핵이 계속되었지만, 임금의 특별 명령에 따라 부총관(副摠管)에 임명되었다.
부친은 통덕랑(通德郞) 이이수(李頤秀)이고, 생부는 이명수(李蓂秀)이다. 형은 이응혁(李應爀)이고, 동생은 이태혁(李泰爀)이다.
1777년(정조 1)에 일어난 역모에 대해 대신들은 은언군(恩彦君) 이인(李裀)을 역모의 화근으로 지목하여 지속적인 탄핵을 하였다.
1794년(정조 18)에도 이인에 대한 상소가 계속되었는데, 정조는 그를 두둔하였다. 정순왕후(貞純王后) 및 대신(臺臣)들은 정조의 하교에 대해 지속적으로 반대 의견을 제시하였는데, 이때 이주혁(李周爀)은 중론에서 벗어나 정조의 뜻에 찬동하였다. 이 일을 계기로 그 또한 대신들로부터 역적의 무리로 지목당하여 수차례 탄핵을 받았다. 그러나 임금은 탄핵을 받아들이지 않고, 그를 전라도병마절도사(全羅道兵馬節度使)에 임명하였다. 이후에도 탄핵이 계속되었지만, 임금의 특별 명령에 따라 부총관(副摠管)에 임명되었다.
[참고문헌]
正祖實錄
[집필자]
정병섭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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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31 | 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