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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규헌(車奎憲)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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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異名)차거함(車巨艦)
호(號)석계(石溪)
호(號)차롱(車聾)
생년?(미상)
졸년?(미상)
시대조선후기
활동분야예술‧체육 > 서예가

[상세내용]

차규헌(車奎憲)
생졸년 미상. 조선 후기 서예가. 호는 석계(石溪)‧차롱(車聾)이고, 다른 이름은 차거함(車巨艦)이다. 본적은 평안남도 평양(平壤)이고, 출신지도 평안남도 평양이다.

정조‧헌종 연간의 인물로 어려서부터 특출한 재주를 지니고 있었다. 부친은 부상(富商)으로 지물(紙物)을 배에 싣고 호남지방을 왕래하며 무역하였다. 어느 날 태풍을 만난 배에 실은 지물이 썩게 되자 아들에게 젖은 종이에다 큰 대자(大字)를 연습하게 하였는데, 배에 실은 종이가 다할 즈음 필력(筆力)이 굳건해졌다. 이때부터 세상 사람들이 ‘차거함’이라 칭하였다.

눌인(訥人) 조광진(曺匡振)의 문인이다. 사람됨이 천진난만하고 스스로 삼가고 지키는 것이 있었다. 젊어서는 귀가 어두워 ‘차롱(車聾)’이라 불리었다.

석암(石庵) 유용(劉墉)의 필법을 배웠으며, 현재 평양 청류벽(淸流壁)과 기린굴(麒麟窟)에 세 자(三字)가 석각(石刻)되어 전해진다. 예서(隷書)에 특히 뛰어났으며, 필적에 있어 소남(少南) 이희수(李喜秀)와 명성을 나란히 하였다.

향년 75세에 세상을 떠났다.

[참고문헌]

逸士遺事

[집필자]

김경희
수정일수정내역
2010-10-232010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