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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거즙(安巨楫)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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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대재(大哉)
생년1704(숙종 30)
졸년1762(영조 38)
시대조선후기
본관광주(廣州)
활동분야충효열 > 효자‧효녀

[상세내용]

안거즙(安巨楫)
1704년(숙종 30)~1762년(영조 38). 조선 후기 효자. 자는 대재(大哉)이다. 본관은 광주(廣州)이고, 출신지는 황해도 개성(開城)이다.

사간공(思簡公) 안성(安省)의 후손으로 조부는 안적(安樀), 부는 안세덕(安世德)이고, 외조부는 신여량(申汝亮)이며, 처부는 유이흥(柳以興)과 이준(李峻)이다.

10세에 부친을 여의자 거상(居喪)을 어른스럽게 집행하였으며, 모친 섬기기를 지극한 효성으로 하니 향리(鄕里)가 교화되어 효자촌(孝子村)으로 불리게 되었다.

일찍이 어린 자식이 기이한 병을 앓았는데 의원이 치료할 약이 없다고 하자, 자신의 손가락을 깨물어 흘린 피를 먹게 하였다. 또 살아있는 물고기를 먹이려 하였으나 당시 가뭄으로 못의 물이 모두 말라버려서 물가에서 눈물만 흘리고 있는데, 갑자기 물구덩이 속에서 잉어 다섯 마리가 뛰어나와 잡아왔다. 그러자 당숙(堂叔) 안세겸(安世謙)이 ‘우리 집안의 왕상(王祥)’이라며 감탄하였다.

모친이 또 독려(毒癘)를 앓고 있었는데, 당시 양제(凉劑)를 사용하고 많은 사람들이 죽었기 때문에 함부로 사용할 수가 없어 슬프게 울며 하늘에 기도하자 갑자기 온약(溫藥)을 쓰라는 말이 들리는 것 같았다. 그래서 온약을 쓰니 곧바로 효험이 나타나자 향리 사람들이 경탄(驚歎)하였다. 그렇게 지극한 효성으로 봉양한 모친이 별세하자 지나친 슬픔으로 몸을 훼손하여 59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였다.

묘는 송도(松都: 현 황해도 개성(開城)) 금사동(金寺洞)에 있다.

[참고문헌]

逸士遺事

[집필자]

김경희
수정일수정내역
2010-10-232010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