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익달(李益達)
[상세내용]
이익달(李益達)
생졸년 미상. 조선 후기 무신. 자는 자겸(子兼)이다.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이조판서(吏曹判書) 이승길(李承吉)의 후손이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정숙주(鄭叔周)와 함께 전라북도 완주군(完州郡) 삼례역(三禮驛)에서 의병을 일으킬 계획을 세웠으나, 화의가 이루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귀향하였다. 이후 1644년(인조 22) 별시 무과에 장원(壯元)으로 급제하였다.
1649년(인조 27) 비변사가 유장(儒將) 홍처후(洪處厚)외 6인 외에 무인으로 차서에 관계 없이 10명을 선발하였는데 이에 포함될 정도로 무예가 출중하였다. 1656년(효종 7) 전라우수군절도사(全羅右水軍節度使)로 수군을 조련시키던 중 악천후로 인해 수군 1천여 명을 포함하여 진도군수(珍島郡守) 이태형(李泰亨)이 익사하였는데 이 사건에 대한 책임을 물어 조정에서는 그를 변방으로 귀양 보냈다. 유배 생활 후 현종 조에 다시 기용되어 영흥부사(永興府使)를 지내기도 하였으나 사헌부로부터 여러 차례 탄핵을 받아 순탄치 않은 관직 생활을 하였다.
이조판서(吏曹判書) 이승길(李承吉)의 후손이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정숙주(鄭叔周)와 함께 전라북도 완주군(完州郡) 삼례역(三禮驛)에서 의병을 일으킬 계획을 세웠으나, 화의가 이루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귀향하였다. 이후 1644년(인조 22) 별시 무과에 장원(壯元)으로 급제하였다.
1649년(인조 27) 비변사가 유장(儒將) 홍처후(洪處厚)외 6인 외에 무인으로 차서에 관계 없이 10명을 선발하였는데 이에 포함될 정도로 무예가 출중하였다. 1656년(효종 7) 전라우수군절도사(全羅右水軍節度使)로 수군을 조련시키던 중 악천후로 인해 수군 1천여 명을 포함하여 진도군수(珍島郡守) 이태형(李泰亨)이 익사하였는데 이 사건에 대한 책임을 물어 조정에서는 그를 변방으로 귀양 보냈다. 유배 생활 후 현종 조에 다시 기용되어 영흥부사(永興府使)를 지내기도 하였으나 사헌부로부터 여러 차례 탄핵을 받아 순탄치 않은 관직 생활을 하였다.
[참고문헌]
호남절의록
호남삼강록
전라문화의 맥과 전북인물
인조실록
호남삼강록
전라문화의 맥과 전북인물
인조실록
[집필자]
장준호
대표명 | 이익달(李益達) |
성명 | 이익달(李益達) |
성명 : "이익달(李益達)"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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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30 | 2009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