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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시운(羅時雲)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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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미상)
졸년?(미상)
시대조선후기
본관안정(安定)
활동분야호국 > 의병
공훈건국훈장 독립장

[상세내용]

나시운(羅時雲)
생졸년 미상. 본관은 안정(安定).

임진왜란 때의 의사(義士) 나수천(羅壽天)의 후손이다. 성품은 호방하고 용맹스러웠으며, 강개(慷慨)하면서도 베푸는 것을 기쁘게 여겼으며, 건장한 체격에 담력도 갖춘 사람이었다. 총을 잘 쏘아 총쏘기를 배우는 사람들이 많았다. 사냥을 나가서는 우거진 길을 앞서서 닦아 나갔다.

1895년(고종 32) 명성황후가 시해되고 단발령이 공포된 후에 안승우(安承禹)가 거의하여 의병을 이끌고 평창에 왔을 때, 나시운은 도령장(都領將)이 되었다. 충주(忠州)에 있을 때는 병이 들어 안승우의 특명을 받고 귀향하였으나 병을 핑계로 집에 남는 것은 떳떳한 일이 아니라며 온 집안의 만류를 뿌리치고 돌아갔다. 가흥(可興) 전투에서 적진(賊陣)으로 깊이 들어가 많은 적을 사살하였으나 끝내 왼쪽 어깨에 총을 맞고 홀로 적에게 사로잡혔다. 포박을 당하고서도 오히려 일본군을 큰소리로 꾸짖으니, 적이 살해하여 불태웠다. 이 때문에 아들 나여실(羅汝實)가흥으로 갔으나 부친의 시신을 수습하지 못하였다.

1995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騎驢隨筆(宋相燾)/丙申原州義兵
大韓民國獨立有功人物錄(國家報勳處, 1997)

[집필자]

고윤희
수정일수정내역
2008-12-312008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