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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정(李在正)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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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자중(子中)
생년?(미상)
졸년?(미상)
시대조선후기
본관여주(驪州)
활동분야문신 > 문신
이원상(李元祥)
조부이정하(李鼎夏)
증조부이헌조(李憲祖)

[상세내용]

이재정(李在正)
생졸년 미상.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여주(驪州). 자는 자중(子中).

증조부는 이헌조(李憲祖)이고, 조부는 이정하(李鼎夏)이며, 부친은 이조참판(吏曹參判)으로 추증된 이원상(李元祥)이다.

1820년(순조 20)에 벼슬에 나아가 6년 동안 관직생활을 하면서 의연하게 스스로 분수를 지켰고, 한 번도 권문세가(權門勢家)에 아부나 청탁을 하지 않으니, 당시 사람들이 그를 대쪽같은 ‘반촌(泮村)의 이처자(李處子)’라고 칭송하였다. 고성군수(固城郡守)에 부임하여 정사(政事)를 청렴하고 정성스럽게 처리하고, 백성들에게 폐단을 주는 정책을 고치는데 힘썼다.

1873년(고종 10)에 흉년이 들자 가련한 백성들에게 조세를 감면해 주면서 상사(上司)의 뜻을 거슬렸다. 이에 사직의 글을 올리고 귀향하려 하니, 군민들이 길을 막고 못 가게하고, 또 관찰사에게 달려가 억울함을 호소하였다. 이에 관찰사가 비로소 깨닫고 참회하여 여러 번 사과했으나 허락하지 않았다. 대신(大臣)들은 그가 법을 잘 지키고 백성을 잘 다스리는 관리라 하여 순량(循良)으로 추천하고 이조참판으로 증직되었다.

아들 이능섭(李能燮)은 1848년(헌종 14) 무신증광문과(戊申增廣文科)에 병과(丙科) 28등으로 급제하여 벼슬이 아전(亞銓)에 이르렀다.

[참고문헌]

國朝榜目
慶州邑誌

[집필자]

김영진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