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계능(洪啓能)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D64DACC4B2A5D1776X0 |
호(號) | 신계(莘溪) |
생년 | ?(미상) |
졸년 | 1776(정조 즉위) |
시대 | 조선후기 |
본관 | 남양(南陽[唐])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홍우조(洪禹肇) |
[관련정보]
[상세내용]
홍계능(洪啓能)
미상∼1776년(정조 즉위).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남양(南陽[唐]). 호는 신계(莘溪). 참봉 홍우조(洪禹肇)의 아들이다.
1750년(영조 26) 우의정 정우량(鄭羽良)의 천거로 등용되어 1757년 왕손교부(王孫敎傅)가 되고, 이듬해 자의(諮議)가 되었다.
1759년 평안도도사로 나갔다가 곧 돌아와 지평을 거쳐 이듬해 집의로 승진하였으며, 1763년 세자시강원진선이 되었다.
이듬해 성격이 난폭하고 남의 비방을 일삼는다 하여 파직되었다가, 1768년 다시 진선에 기용되었다.
이때 또 다른 풍산홍씨(豊山洪氏) 일파가 시파(時派)를 이루어 세손(世孫: 뒤의 정조)을 보호하려 하자 벽파(僻派) 홍인한(洪麟漢)과 더불어 세손의 즉위를 반대하였다가 정조가 즉위하자 하옥되어 옥사하였다. 아들 홍신해(洪信海)와 조카 홍이해(洪履海)도 모두 주살(誅殺)당하였다.
1750년(영조 26) 우의정 정우량(鄭羽良)의 천거로 등용되어 1757년 왕손교부(王孫敎傅)가 되고, 이듬해 자의(諮議)가 되었다.
1759년 평안도도사로 나갔다가 곧 돌아와 지평을 거쳐 이듬해 집의로 승진하였으며, 1763년 세자시강원진선이 되었다.
이듬해 성격이 난폭하고 남의 비방을 일삼는다 하여 파직되었다가, 1768년 다시 진선에 기용되었다.
이때 또 다른 풍산홍씨(豊山洪氏) 일파가 시파(時派)를 이루어 세손(世孫: 뒤의 정조)을 보호하려 하자 벽파(僻派) 홍인한(洪麟漢)과 더불어 세손의 즉위를 반대하였다가 정조가 즉위하자 하옥되어 옥사하였다. 아들 홍신해(洪信海)와 조카 홍이해(洪履海)도 모두 주살(誅殺)당하였다.
[참고문헌]
英祖實錄
正祖實錄
續明義錄
正祖實錄
續明義錄
[집필자]
문수홍(文守弘)
명 : "계능(啓能)"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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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