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원(丁載遠)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815C7ACC6D0B1730X0 |
자(字) | 기백(器伯) |
생년 | 1730(영조 6) |
졸년 | 1792(정조 16) |
시대 | 조선후기 |
본관 | 나주(羅州)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정지해(丁志諧) |
5대조 | 정시윤(丁時潤) |
[상세내용]
정재원(丁載遠)
1730년(영조 6)~1792년(정조 16).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기백(器伯).
참의 정시윤(丁時潤)의 현손으로, 정지해(丁志諧)의 아들이다.
어려서부터 문학에만 힘쓰고 재물에는 뜻을 두지 않았다. 일찍이 광주(廣州)의 세과(歲課)에 부방하였는데, 당시 광주유수 이종성(李宗城)으로부터 글의 뛰어남과 뜻의 원대함을 인정받았다.
1762년(영조 38) 생원에 합격하였다.
제술이 영조에게 인정을 받고 곧바로 이조의 관직에 임명되었다.
그뒤 참봉을 거쳐 여러 관직을 역임한 뒤 1780년(정조 4) 예천군수가 되었으며, 관직은 진주목사에 그쳤다.
참의 정시윤(丁時潤)의 현손으로, 정지해(丁志諧)의 아들이다.
어려서부터 문학에만 힘쓰고 재물에는 뜻을 두지 않았다. 일찍이 광주(廣州)의 세과(歲課)에 부방하였는데, 당시 광주유수 이종성(李宗城)으로부터 글의 뛰어남과 뜻의 원대함을 인정받았다.
1762년(영조 38) 생원에 합격하였다.
제술이 영조에게 인정을 받고 곧바로 이조의 관직에 임명되었다.
그뒤 참봉을 거쳐 여러 관직을 역임한 뒤 1780년(정조 4) 예천군수가 되었으며, 관직은 진주목사에 그쳤다.
[참고문헌]
正祖實錄
樊巖集
樊巖集
[집필자]
손승철(孫承喆)
명 : "재원(載遠)"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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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