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태(朴慶泰)
[상세내용]
박경태(朴慶泰)
생졸년 미상. 조선 후기의 무신. 증호조참판 박석민(朴碩敏)의 아들이다.
36세 때 무과에 급제하였다.
1728년(영조 4) 아오지만호(阿吾地萬戶)에 임명되어 부임하는 도중에 양주에서 이인좌(李麟佐)가 반란을 일으켰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에 그는 만호의 관직을 우선 버려두고 이 반란의 토벌에 참여하기로 하였다.
서울로 돌아온 그는 토벌군의 도원수로 임명된 오명항(吳命恒)에게 달려가 토벌군으로 종군할 것을 청하여 휘하병이 되었다. 이 토평군으로 출범하여 안성‧죽산에서 큰 공을 세웠다.
그뒤 갈파지첨사(坡知僉使)와 동관진첨사(潼關鎭僉使)‧장기현감을 제수받았으나 부모 봉양을 이유로 부임하지 않았다. 뒤에 중추부(中樞府)의 관직이 다시 내려졌고, 관계는 가의대부(嘉義大夫)에 이르렀다.
36세 때 무과에 급제하였다.
1728년(영조 4) 아오지만호(阿吾地萬戶)에 임명되어 부임하는 도중에 양주에서 이인좌(李麟佐)가 반란을 일으켰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에 그는 만호의 관직을 우선 버려두고 이 반란의 토벌에 참여하기로 하였다.
서울로 돌아온 그는 토벌군의 도원수로 임명된 오명항(吳命恒)에게 달려가 토벌군으로 종군할 것을 청하여 휘하병이 되었다. 이 토평군으로 출범하여 안성‧죽산에서 큰 공을 세웠다.
그뒤 갈파지첨사(坡知僉使)와 동관진첨사(潼關鎭僉使)‧장기현감을 제수받았으나 부모 봉양을 이유로 부임하지 않았다. 뒤에 중추부(中樞府)의 관직이 다시 내려졌고, 관계는 가의대부(嘉義大夫)에 이르렀다.
[참고문헌]
英祖實錄
甲山邑誌
甲山邑誌
[집필자]
이원균(李源鈞)
명 : "경태(慶泰)"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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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