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치검색 표제어 전체
검색
김두성(金斗性)

[요약정보]

UCIG002+AKS-KHF_13AE40B450C131D1811X0
이명(異名)김기성(金箕性)
생년?(미상)
졸년1811(순조 11)
시대조선후기
활동분야문신 > 문신
김상익(金相翊)

[상세내용]

김두성(金斗性)
미상∼1811년(순조 11). 조선 후기 문신이며 가인(歌人). 정조순조 때의 김기성(金箕性)과 이명동인(異名同人)이다. 참의 김상익(金相翊)의 아들이다.

『청구가요(靑邱歌謠)』김두성으로 2수의 시조가 전한다. 『청구가요』에는 19수가 실려 있으나, 김수장(金壽長)의 후서(後序) 내용이나 19수를 여러 가집(歌集)에서 비교, 검토해 볼 때 김두성의 작품은 2수뿐이고, 17수는 박문욱(朴文郁)의 작품으로 보인다.

『영조실록』에 의하면 “청연군주(淸衍郡主)김두성과 정혼하여 광은부위(光恩副尉)라 부르니......”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 『정조실록』『순조실록』에는 광은부위김기성이라고 한 기록이 여러 곳에 보이며, 여기에 의하면 김기성은 1790년(정조 14)에 동지 겸 사은정사청나라에 다녀왔으며 뒤에 서사관(書寫官)을 지냈다. 이로 미루어보아 김기성과 동일인물임을 알 수 있다.

『청구가요』 소재 작품의 작가 표기도 각 가집에 따라 달라 ‘김두성’(청구가요, 서울대본 악부), ‘김기성’(甁窩歌曲集, 육당본 청구영언)으로 되어 있고, 한편 김기성김두성을 각각 ‘광은부위’라 하기도 했다.

또한, 2수 중에 “추월(秋月)이 만정(滿庭)한데......”라는 시조는 작자의 17세 때 혹은 18세 때 작품이라고도 하였다. 『청구가요』가 1764년(영조 40)에서 1769년에 걸쳐 만들어진 가집이니, 2수의 작품은 작자의 10대 작품으로 추정된다. 김두성청연군주와 정혼한 것이 1765년이며, 청연군주는 당시 12세였고, 김두성 역시 비슷했으리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한편, 『청구가요』의 시조작가 김두성광은부위였던 김두성(김기성)과는 전혀 관계없는 동명이인일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청구가요』는 계미본(癸未本) 『해동가요』 편찬 이후에 그 보수작업으로 이루어진 것이며, 여기에 실린 작자들은 매우 친밀했던 동료나 후배들로서 김수장과 더불어 당대의 대표적인 가객들이었다. 『청구가요』김수장의 나이가 75세에서 80세 되던 사이에 이루어진 가집이다.

이와같이 고령이었던 그가 10대의 광은부위의 작품을 수록하였을까 하는 의문이 생기는데, 이것은 『청구가요』의 성격으로 미루어보더라도 그 가능성이 희박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렇게 볼 때 김수장과 교유하던 김두성이라는 가인이 있었고, 그의 작품이 동명이던 광은부위 김두성(김기성)의 작품으로 후세에 와전된 것이라 할 수도 있다.

[참고문헌]

英祖實錄
正祖實錄
純祖實錄
靑邱歌謠(金三不, 校注本 海東歌謠, 正音社, 1950)
時調의 文獻的 硏究(沈載完, 世宗文化社, 1972)
古時調論(崔東元, 三英社, 1980)

[집필자]

최동원(崔東元)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