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석(張基奭)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7A5AE30C11DB1860X0 |
자(字) | 진여(震汝) |
생년 | 1860(철종 11) |
졸년 | 1911 |
시대 | 조선후기 |
본관 | 인동(仁同) |
활동분야 | 충효열 > 순절인 |
출신지 | 경상북도 성주 |
공훈 | 건국포장 |
[상세내용]
장기석(張基奭)
1860년(철종 11)∼1911년. 순국지사.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진여(震汝). 경상북도 성주 출신.
일찍 부모를 여의고 몹시 가난하여 38세까지 공부를 하지 못하였다. 부인 박씨와 함께 열심히 살아 재산을 모은 뒤, 공부를 못하였음을 부끄럽게 여겨 3년간 두문불출하고 밤낮없이 학업에 전념하였다.
일제 때 성주군수와 경찰서장으로부터 메이지(明治)의 천장절(天長節)경축식에 참석할 것을 강요받자, 이를 단호히 거절하고 일본경찰을 목침으로 때려 중상을 입힌 뒤 대구형무소에 수감되었다. 그곳에서 바로 단식을 시작하여 10여일 만에 의식을 잃었다.
일본경찰들이 강제로 음식을 먹이려 하자 그릇으로 서장을 때리며 먹기를 거부, 옥중에서 순절하였다.
1977년에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
일찍 부모를 여의고 몹시 가난하여 38세까지 공부를 하지 못하였다. 부인 박씨와 함께 열심히 살아 재산을 모은 뒤, 공부를 못하였음을 부끄럽게 여겨 3년간 두문불출하고 밤낮없이 학업에 전념하였다.
일제 때 성주군수와 경찰서장으로부터 메이지(明治)의 천장절(天長節)경축식에 참석할 것을 강요받자, 이를 단호히 거절하고 일본경찰을 목침으로 때려 중상을 입힌 뒤 대구형무소에 수감되었다. 그곳에서 바로 단식을 시작하여 10여일 만에 의식을 잃었다.
일본경찰들이 강제로 음식을 먹이려 하자 그릇으로 서장을 때리며 먹기를 거부, 옥중에서 순절하였다.
1977년에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騎驢隨筆
[집필자]
신용하(愼鏞廈)
대표명 | 장기석(張基奭) |
성명 | 장기석(張基奭) |
성명 : "장기석(張基奭)"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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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