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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수(金天洙)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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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성향(聖享)
생년1860(철종 11)
졸년?(미상)
시대조선후기
본관광산(光山)
활동분야문신 > 문신
김영목(金永穆)
외조부홍영주(洪寧周)

[상세내용]

김천수(金天洙)
1860년(철종 11)∼미상. 조선 말기의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성향(聖享).

김영목(金永穆)의 아들이며, 모친은 홍영주(洪寧周)의 딸이다.

1875년 진사로서 춘도기(春到記)에서 제술을 하고, 전시(殿試)에 직부(直赴)하라는 특명을 받았다.

1878년 증광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그뒤 홍문관응교를 지냈고, 갑신정변 뒤 민씨정권이 군제를 개편할 때 잠시 군사마(軍司馬)를 지냈다.

1890년 갑신정변의 연루자로 투옥되었던 박호양(朴顥陽)이 방면되자 사간원대사간으로 강력하게 반대하였다.

1892년 예조참의로 왕세자수하절목(王世子受賀節目)수정작업에 참여하였는데, 그 절목이 이용원(李容元)에게 비판을 받자 사임하고자 하였으나 허락받지 못하였다.

1900년을 전후하여 광주군수(光州郡守)경주군수로 재임하였는데, 탁지부에서 그가 모리배와 짜고 세금 상공을 지체하였고, 교체시에도 세금관계가 불분명하므로 면관시키고 조사할 것을 요청하였다.

이에 1907년 비서승(祕書丞)에 임명될 때까지 관직에서 물러나 있었고, 순종의 즉위식에 비서승 겸 장례(祕書丞兼掌禮)로 활약하였다.

또한, 규장각기주관을 지냈으며, 1910년 8월 훈3등(勳三等)을 받고, 정2품으로 승급되었다.

[참고문헌]

高宗實錄
國朝榜目

[집필자]

박민영(朴敏泳)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