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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교(朴泳敎)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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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호(諡號)충목(忠穆)
생년1849(헌종 15)
졸년1884(고종 21)
시대조선후기
본관반남(潘南)
활동분야문신 > 문신
박원양(朴元陽)

[상세내용]

박영교(朴泳敎)
1849년(헌종 15)∼1884년(고종 21). 조선 말기의 문신. 본관은 반남(潘南).

판서 박원양(朴元陽)의 아들이며, 박영효(朴泳孝)의 형이다.

1878년 음보(蔭補)로 금성현감(金城縣監)을 지내고 1881년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수찬(修撰)이 되었으며, 통리기무아문주사(統理機務衙門主事)를 거쳐 승지(承旨)가 되었다.

1882년 『지구도경(地球圖經)』을 저술하였으며, 1883년에는 전라도암행어사가 되어 활동한 뒤 다시 승지에 임명되었다.

1884년 12월 4일 아우 박영효김옥균(金玉均)홍영식(洪英植) 등 개화당(開化黨)이 일으킨 갑신정변에 함께 가담, 우정국(郵政局) 개국 축하연을 계기로 사대당(事大黨) 요인들을 타도하고 정권을 장악하여 도승지(都承旨)가 되었다.

그러나 청군(淸軍)의 개입으로 3일 만에 정변이 실패로 돌아가자 김옥균박영효서광범(徐光範)서재필(徐載弼) 등은 일본으로 망명했으며, 자신은 홍영식과 더불어 끝까지 왕을 호위하다가 사대당에 의해서 살해되었다.

1894년 12월 죄명이 효주(爻周)되고 복관(復官)되었다. 시호는 충목(忠穆)이다.

[참고문헌]

日省錄
高宗實錄
承政院日記
高宗時代史 1∼3(國史編纂委員會, 1970)

[집필자]

홍순만(洪淳晩)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