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정식(閔正植)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BBFCC815C2DDB1848X0 |
자(字) | 유대(有大) |
생년 | 1848(헌종 14) |
졸년 | ?(미상) |
시대 | 조선후기 |
본관 | 여흥(驪興)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민영직(閔泳稷) |
출신지 | 서울 |
[관련정보]
[상세내용]
민정식(閔正植)
1848년(헌종 14)∼미상. 조선 말기의 척신(戚臣).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유대(有大). 서울 출신. 민영직(閔泳稷)의 아들이다.
1882년(고종 19)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885년 시강원문학(侍講院文學)‧성균관대사성, 1886년 이조참의, 1888년 홍문관부제학, 1889년 이조참판‧보덕(輔德), 1890년 규장각직제학, 경상‧전라도 관찰사 등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1887년 전라도관찰사로서 일본 어선이 건입포(建入浦)에 침입하여 그곳 섬사람 16명을 살상한 사건을 계기로, 왜구침입에 대한 철저한 금제책(禁制策)을 강구할 것을 조정에 건의하기도 하였다.
1890년 한성부판윤으로 있다가 경상도관찰사로 전임되었을 때 함창민란(咸昌民亂)이 일어나자 이를 진압하였다.
대한제국이 수립된 이후 궁내부특진관을 지내는 등 조선 말엽 척족 민씨의 한 집안으로 권세가 당당하였다.
1882년(고종 19)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885년 시강원문학(侍講院文學)‧성균관대사성, 1886년 이조참의, 1888년 홍문관부제학, 1889년 이조참판‧보덕(輔德), 1890년 규장각직제학, 경상‧전라도 관찰사 등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1887년 전라도관찰사로서 일본 어선이 건입포(建入浦)에 침입하여 그곳 섬사람 16명을 살상한 사건을 계기로, 왜구침입에 대한 철저한 금제책(禁制策)을 강구할 것을 조정에 건의하기도 하였다.
1890년 한성부판윤으로 있다가 경상도관찰사로 전임되었을 때 함창민란(咸昌民亂)이 일어나자 이를 진압하였다.
대한제국이 수립된 이후 궁내부특진관을 지내는 등 조선 말엽 척족 민씨의 한 집안으로 권세가 당당하였다.
[참고문헌]
高宗紀事
承政院日記
日省錄
國朝榜目
承政院日記
日省錄
國朝榜目
[집필자]
최홍규(崔洪奎)
명 : "정식(正植)"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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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