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직(李耕稙)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774ACBDC9C1B1841X0 |
자(字) | 위양(威穰) |
호(號) | 신보(莘夫) |
시호(諡號) | 충숙(忠肅) |
생년 | 1841(헌종 7) |
졸년 | 1895(고종 32) |
시대 | 조선후기 |
본관 | 한산(韓山)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이선보(李善溥) |
출생지 | 충청북도 청주 |

[관련정보]
[상세내용]
이경직(李耕稙)
1841년(헌종 7)∼1895년(고종 32). 조선 말기의 문신.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위양(威穰), 호는 신보(莘夫). 충청북도 청주 출생. 참판 이선보(李善溥)의 아들이다.
1876년(고종 13) 동몽교관(童蒙敎官)이 된 뒤 1885년 문과에 급제하여 이듬해 홍문관부수찬‧참의내무부사(參議內務府事) 등을 거쳐 1892년 전라도관찰사가 되었으나, 이듬해 과거응시를 가장하여 전라도 동학교도들이 대거 상경, 교조의 신원(伸寃)을 요구한 사건이 일어나 그 책임을 지고 파면되었다가, 1895년 궁내부대신이 되었다.
을미사변이 일어나면서, 8월 21일 밤에 궁궐을 습격한 일본 낭인(浪人) 패에 항거하다가 민비(閔妃)와 함께 살해되었다.
1897년 대광보국숭록(大匡輔國崇祿)에 들고, 1899년에는 의정부의정(議政府議政)이 추증되었다. 시호는 충숙(忠肅)이다.
1876년(고종 13) 동몽교관(童蒙敎官)이 된 뒤 1885년 문과에 급제하여 이듬해 홍문관부수찬‧참의내무부사(參議內務府事) 등을 거쳐 1892년 전라도관찰사가 되었으나, 이듬해 과거응시를 가장하여 전라도 동학교도들이 대거 상경, 교조의 신원(伸寃)을 요구한 사건이 일어나 그 책임을 지고 파면되었다가, 1895년 궁내부대신이 되었다.
을미사변이 일어나면서, 8월 21일 밤에 궁궐을 습격한 일본 낭인(浪人) 패에 항거하다가 민비(閔妃)와 함께 살해되었다.
1897년 대광보국숭록(大匡輔國崇祿)에 들고, 1899년에는 의정부의정(議政府議政)이 추증되었다. 시호는 충숙(忠肅)이다.
[참고문헌]
騎驢隨筆
大韓季年史
大韓季年史
[집필자]
조항래(趙恒來)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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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