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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언(李芳彦)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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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異名)이민석(李民錫)
자(字)자방(子邦)
호(號)방언(芳彦)
생년1838(헌종 4)
졸년1895(고종 32)
시대조선후기
본관인천(仁川)
활동분야종교 > 동학인
이중길(李重吉)
출신지전라남도 장흥군(長興郡) 용산(龍山)

[상세내용]

이방언(李芳彦)
1838년(헌종 4)∼1895년(고종 32). 조선 말기 동학 접주‧농민봉기 주도자. 자는 자방(子邦), 호는 방언(芳彦)이다. 본명은 이민석(李民錫), 출신지는 전라남도 장흥군(長興郡) 용산(龍山)이다. 대제학(大提學) 이문화(李文和)의 후손이며, 부친은 장흥향교 용산리 향약 청원계의 도정 이중길(李重吉)이다.

부유한 유교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의협심이 강하고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성품이었다. 장흥지방에 흉년이 들어 농민들이 생계를 잇기 조차 힘들었는데, 관아에서 진결세(陳結稅)를 독촉하자, 전라도감사에게 진정하여 농민들이 진결세를 감면받게 하였다.

유학자 고산(鼓山) 임헌회(林憲晦)의 제자로, 오남(吾南) 김한섭(金漢燮)과 동문수학하였다. 그러나 1890년(고종 27) 초 주자학 지상주의를 비판하고, 천도에 합치하는 수행을 통해 새 세상을 이룩하려는 동학의 가르침을 수용하여 동학에 입교, 장흥어선접의 접주로서 동학농민군의 지도자가 되었다. ‘장태’를 사용하여 ‘황룡강 전투’를 지휘, 관군과 일본군에게 대승을 거두었는데, 이로 인하여 ‘장태장군’ 또는 ‘남도장군’이라는 별호를 얻었다. 그러나 1894년(고종 31) 12월 ‘석대전투’에서 대패하여 체포되었으며, 다음 해 서울로 이송된 후 무죄가 선고되어 석방되었다. 그러나 이후 다시 체포되어 외아들 이성호와 함께 참형을 당했다.

현재 장흥공설운동장 윗편에 ‘동학농민운동기념탑’과 ‘동학루’를 세워 그 뜻을 기리고 있다.

[참고문헌]

동학사
갑오동학혁명사
장흥군지
전라남도지
나는 호남인로소이다
조선대학교박물관(http://museum.chosun.ac.kr/)

[집필자]

전주원
수정일수정내역
2009-09-302009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