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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재(李命宰)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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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성의(聖意)
호(號)금어(琴漁)
생년1837(헌종 3)
졸년1895(고종 32)
시대조선후기
본관연안(延安)
활동분야문신 > 문신
이공익(李公翼)
풍산홍씨(豊山洪氏)
생부이만수(李晩秀)
외조부홍양호(洪良浩)
저서『금어유고』

[상세내용]

이명재(李命宰)
1837년(헌종 3)∼1895년(고종 32).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성의(聖意), 호는 금어(琴漁). 아 버지는 이만수(李晩秀)이며, 모친은 풍산홍씨(豊山洪氏)홍양호(洪良浩)의 딸이다. 큰아버지 이공익(李公翼)에게 입양되었으며, 생부에게 수학하였다.

1853년(철종 4) 생원시에 장원하였고, 1874년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가주서(假注書)가 되었다.

그뒤 성균관전적동학교수(東學敎授)부교리병조정랑영돈녕동부승지이조참의예조참판대사헌 등을 지내다가 몸이 쇠약해지자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으로 돌아가 강호에 놀며 자연을 벗삼아 한가로운 만년을 보냈다.

경전을 근본으로 삼고 제자백가서를 두루 통독하였으며, 덕치(德治)와 인정(仁政)을 베풀어 위로 군주를 보필하고, 조정에는 어질고 능력 있는 인재를 등용하여 국민에게 최대한의 복리를 증진시켜주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임을 주장하였다.

노년에는 금호(琴湖)가에 살면서 시와 노래로 소일하고 많은 저서를 남겼는데, 그 중 국문으로 저작된 「금호어인가(琴湖漁人歌)」와 「단경삼첩(短脛三疊)」 등은 고전연구에 좋은 자료가 된다.

저서로는 『금어유고』가 있다.

[참고문헌]

國朝榜目
琴漁遺稿

[집필자]

이순두(李純斗)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