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관(朴齊寬)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BC15C81CAD00B1834X0 |
자(字) | 치교(致敎) |
호(號) | 율암(栗庵) |
생년 | 1834(순조 34) |
졸년 | ?(미상) |
시대 | 조선후기 |
본관 | 반남(潘南)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상세내용]
박제관(朴齊寬)
1834년(순조 34)∼미상.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치교(致敎), 호는 율암(栗庵).
1859년(철종 10)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 현령 등 지방관을 지냈다.
1867년(고종 4) 경기도암행어사가 되어 탐관오리의 숙청, 우수관리의 표창, 지방제도 개선 등에 공헌하였다.
1871년 안동부사에서 영해부안검사(寧海府按檢使)가 되어 민란을 일으킨 이제발(李濟發) 등 민란관련자 38명을 처형하여 폭동을 진압하였다.
1874년에는 동래부사가 되어 이듬해 일본사신 모리야마(森山茂)와 통상을 교섭하였으나 실패하자, 일본은 운요호(雲揚號) 등 군함 3척을 부산에 파견하여 연습을 빙자, 위협하였다.
민씨파(閔氏派)의 인물로 그뒤 충청도‧경기도관찰사 등을 거쳐 이조판서 및 공조판서를 역임하였다.
1859년(철종 10)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 현령 등 지방관을 지냈다.
1867년(고종 4) 경기도암행어사가 되어 탐관오리의 숙청, 우수관리의 표창, 지방제도 개선 등에 공헌하였다.
1871년 안동부사에서 영해부안검사(寧海府按檢使)가 되어 민란을 일으킨 이제발(李濟發) 등 민란관련자 38명을 처형하여 폭동을 진압하였다.
1874년에는 동래부사가 되어 이듬해 일본사신 모리야마(森山茂)와 통상을 교섭하였으나 실패하자, 일본은 운요호(雲揚號) 등 군함 3척을 부산에 파견하여 연습을 빙자, 위협하였다.
민씨파(閔氏派)의 인물로 그뒤 충청도‧경기도관찰사 등을 거쳐 이조판서 및 공조판서를 역임하였다.
[참고문헌]
日省錄
高宗實錄
純宗實錄
承政院日記
高宗時代史 1∼3(國史編纂委員會, 1970)
高宗實錄
純宗實錄
承政院日記
高宗時代史 1∼3(國史編纂委員會, 1970)
[집필자]
조항래(趙恒來)
명 : "제관(齊寬)"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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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