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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종(憲宗)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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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異名)이환(李奐)
자(字)문응(文應)
호(號)원헌(元軒)
생년1827(순조 27)
졸년1849(헌종 15)
시대조선후기
본관전주(全州)
활동분야왕실 > 왕
신정왕후(神貞王后)
조모순원왕후(純元王后)
처부김조근(金祖根)
처부홍재룡(洪在龍)
외조부풍은부원군(豊恩府院君)
외조부조만영(趙萬永)
묘소경기도 양주

[상세내용]

헌종(憲宗)
1827년(순조 27)∼1849년(헌종 15). 조선 제24대 왕. 재위 1835년∼1849년. 본관은 전주(全州). 이름은 이환(李奐). 자는 문응(文應), 호는 원헌(元軒).

1827년 7월 18일 창경궁 경춘전(景春殿)에서 태어났다. 순조의 손자로, 익종의 아들이며, 모친은 풍은부원군(豊恩府院君) 조만영(趙萬永)의 딸 신정왕후(神貞王后)이다.

1830년(순조 30) 왕세손(王世孫)에 책봉되고, 1834년 순조가 죽자 이해 8세의 어린 나이로 경희궁 숭정문(崇政門)에서 즉위하니, 대왕대비 순원왕후(純元王后: 순조妃)가 수렴청정을 하였다.

1837년(헌종 3) 3월 영흥부원군(永興府院君) 김조근(金祖根)의 딸을 왕비(孝顯王后)로 맞았으나 1843년에 죽자 이듬해 10월 익풍부원군(益豊府院君) 홍재룡(洪在龍)의 딸을 계비(明憲王后)로 맞았다. 새로 등장한 외척 풍양조씨 일문의 세력이 우세해지면서, 순조 때부터 정권을 전횡해 온 안동김씨를 물리치고 한동안 세도를 잡았으나, 자체 내의 알력과 1846년 조만영의 죽음을 계기로 정권은 다시 안동김씨의 수중으로 넘어갔다.

대왕대비의 철렴(撤簾)으로 1841년 비로소 친정(親政)의 길이 열렸으나 세도정치의 여파인 과거제도 및 국가재정의 기본이 되는 삼정(三政)의 문란 등으로 국정이 혼란해졌으며, 재위 15년 중 9년에 걸쳐 수재(水災)가 발생하여 민생고가 가시지 않았다.

또한, 1836년에는 남응중(南膺中), 1844년에는 이원덕(李遠德)민진용(閔晉鏞) 등의 모반사건이 일어나고, 1848년부터는 많은 이양선(異樣船)의 출몰과 그 행패로 인하여 민심이 소연하였다.

순조 때의 천주교 탄압정책을 이어받아서 1839년에 주교 앵베르(Imbert, L. J. M.), 신부 모방(Maubant, P. P.)샤스탕(Chastan, J. H.)을 비롯하여 많은 신자를 학살하였으며(기해박해), 이어 천주교인을 적발하기 위하여 오가작통법(五家作統法)을 실시하고, 1846년 최초의 한국인 신부 김대건(金大建)을 처형하였다.

재위기간에 『열성지장(列聖誌狀)』『동국사략』『문원보불(文苑黼黻)』『동국문헌비고(東國文獻備考)』『삼조보감(三朝寶鑑)』 등을 찬수하게 하고, 각도에 제언(堤堰)을 수축하게 하는 등의 치적을 쌓았다.

글씨를 잘 썼다. 1849년 창덕궁 중희당(重熙堂)에서 23세로 후사 없이 죽었다. 수용(睟容) 1본이 선원전(璿源殿)에 봉안되었으며, 능은 경기도 양주 건원릉(健元陵) 서쪽 경릉(景陵)이다.

[참고문헌]

憲宗實錄
璿源系譜
備邊司謄錄

[집필자]

김진봉(金鎭鳳)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