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치검색 표제어 전체
검색
허욱(許煜)

[요약정보]

UCIG002+AKS-KHF_12D5C8C6B1FFFFB1830X0
생년1827(순조 27)
졸년1883(고종 20)
시대조선후기
활동분야변란 > 반란인
허전(許)
주소사(周召史)
출생지경상도 순흥

[상세내용]

허욱(許煜)
1827년(순조 27)∼1883년(고종 20). 대원군(大院君)의 가인(家人)으로 임오군변(壬午軍變)의 주동인물. 경상도 순흥 출생. 부친은 허전(許)이며, 모친은 주소사(周召史)이다.

1882년(고종 19) 6월 5일 선혜청(宣惠廳)의 도봉소(都捧所)에서 일어난 군료분쟁사건을 계기로 6월 9일 구훈련도감(舊訓鍊都監)소속의 군병들이 중심이 되어 군변이 일어났다.

봉기한 군병과 이에 가세한 백성들이 선혜청당상 민겸호(閔謙鎬)의 집을 습격, 파괴한 다음 운현궁(雲峴宮)에 이르러 대원군에게 구원을 요청하였다.

이때 대원군김장손(金長孫)유춘만(柳春萬) 등 군변주동자에게 행동방침에 대한 지령을 내리는 한편, 허욱으로 하여금 군복을 입고 환도(環刀)를 소지시킨 다음 군병 200명을지휘하도록 하여 군변을 확대시켰다고 한다.

그가 군변주동자로 지목, 체포되어 추국(推鞫)을 당하게 된 것은 다음해 6월 7일과 8일 이틀간이며, 이때 함께 추국을 당한 사람은 장태진(張泰辰)장순길(張順吉)김창영(金昌榮)유흥엽(柳興燁)장재식(張在植)이봉학(李奉學) 등 6명이다.

포도청의 문초에서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은 군복의 착용과 200명 군병의 영솔‧지휘 등을 자복하였으나, 의금부(義禁府)정국(庭鞫)에서는 뇌형(牢刑)에 따른 난초(亂招)임을 주장, 혐의사실을 전면적으로 부인하였다.

특히, 김태희(金泰熙)조종순(趙宗淳)이경문(李景文)고윤영(高允永)지봉식(池奉植) 등 입궐하지 않았던 사람들과의 접촉을 들어 그 자신의 군병지휘설이 무초(誣招)임을 주장하였으나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883년 6월 9일 모반대역부도(謀反大逆不道)로 결안(結案)되어 다음날 종루가상(鐘樓街上)에서 능지처사(陵遲處死)되었다.

[참고문헌]

癸未大逆不道罪人煜等鞫案
壬午軍變(權錫奉, 한국사 16, 국사편찬위원회, 1975)

[집필자]

권석봉(權錫奉)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