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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규승(曺逵承)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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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경휘(景輝)
호(號)성재(省齋)
생년1827(순조 27)
졸년1908(융희 2)
시대조선후기
본관창녕(昌寧)
활동분야문신 > 문신
조경섭(曺景燮)
월성이씨(月城李氏)
조부조학경(曺學敬)
외조부이주신(李柱臣)

[상세내용]

조규승(曺逵承)
1827년(순조 27)∼1908년.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경휘(景輝), 호는 성재(省齋).

부친은 조경섭(曺景燮)이며, 모친은 월성이씨(月城李氏)이주신(李柱臣)의 딸이다. 할아버지 조학경(曺學敬)에게 수학하였다.

1867년(고종 4)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승문원부정자가 되었다.

그뒤 성현도찰방(省峴道察訪)자인현감성균관전적사간원정언사헌부지평 등을 역임하였다.

특히, 「삼정책(三政策)」을 올려 왕의 마음은 모든 교화의 근원이 됨을 역설하였고, 「오조소(五條疏)」를 올려 당시의 급선무를 다섯가지로 분류, 시행을 촉구하였다.

또한, 경연(經筵)에서 논리정연하게 시강하여 고종의 칭찬을 받았다.

1871년 관직에서 물러나 학문에 몰두하고 후진양성에 전념하였다.

[참고문헌]

國朝榜目
省齋遺稿

[집필자]

조명근(曺命根)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