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봉하(趙鳳夏)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870BD09D558B1817X0 |
자(字) | 상호(商皓) |
생년 | 1817(순조 17) |
졸년 | ?(미상) |
시대 | 조선후기 |
본관 | 풍양(豊壤) |
활동분야 | 문신 |

부 | 조병현(趙秉鉉) |

[상세내용]
조봉하(趙鳳夏)
1817년(순조 17)~미상. 조선 후기 문신. 자는 상호(商皓)이다. 본관은 풍양(豊壤)이다.
목사(牧使) 조상기(趙尙紀)의 후손으로, 고조는 예조판서(禮曹判書) 각미(覺迷) 조환(趙瑍)이고, 증조부는 서윤(庶尹) 조진명(趙鎭明)이며, 조부는 이조판서(吏曹判書) 월곡(月谷) 조득영(趙得永)이다. 부친 판서(判書) 조병현(趙秉鉉)과 모친 이조참판(吏曹參判) 서정보(徐鼎輔)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인은 이회연(李晦淵)의 딸이다.
1839년(헌종 5)에는 성균관에서 실시한 황감제(黃柑製)에 참여하여 부(賦) 분야의 수석을 차지하였고, 전시(殿試)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받았다. 1840년(헌종 6) 식년시 문과에서 병과 3위로 급제하였고, 이후 규장각대교(奎章閣待敎)에 임명되었다. 1842년(헌종 8) 서장관(書狀官)에 임명되어, 중국을 다녀왔다. 1863년(철종 14)에는 이조참의(吏曹參議)에 임명되었다. 1864년(고종 1)에는 철종의 장례에서 취토(取土)를 맡았는데, 그 공로를 인정받아서 품계를 올려 받았다. 1866년(고종 3)에는 성균관대사성(成均館大司成)에 임명되었다. 이후 도총부도총관(都總府都摠管)‧예조판서(禮曹判書)‧이조판서(吏曹判書)‧한성부판윤(漢城府判尹) 등을 역임하였다.
목사(牧使) 조상기(趙尙紀)의 후손으로, 고조는 예조판서(禮曹判書) 각미(覺迷) 조환(趙瑍)이고, 증조부는 서윤(庶尹) 조진명(趙鎭明)이며, 조부는 이조판서(吏曹判書) 월곡(月谷) 조득영(趙得永)이다. 부친 판서(判書) 조병현(趙秉鉉)과 모친 이조참판(吏曹參判) 서정보(徐鼎輔)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인은 이회연(李晦淵)의 딸이다.
1839년(헌종 5)에는 성균관에서 실시한 황감제(黃柑製)에 참여하여 부(賦) 분야의 수석을 차지하였고, 전시(殿試)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받았다. 1840년(헌종 6) 식년시 문과에서 병과 3위로 급제하였고, 이후 규장각대교(奎章閣待敎)에 임명되었다. 1842년(헌종 8) 서장관(書狀官)에 임명되어, 중국을 다녀왔다. 1863년(철종 14)에는 이조참의(吏曹參議)에 임명되었다. 1864년(고종 1)에는 철종의 장례에서 취토(取土)를 맡았는데, 그 공로를 인정받아서 품계를 올려 받았다. 1866년(고종 3)에는 성균관대사성(成均館大司成)에 임명되었다. 이후 도총부도총관(都總府都摠管)‧예조판서(禮曹判書)‧이조판서(吏曹判書)‧한성부판윤(漢城府判尹) 등을 역임하였다.
[참고문헌]
高宗實錄
國朝榜目
縉紳八世譜
哲宗實錄
憲宗實錄
國朝榜目
縉紳八世譜
哲宗實錄
憲宗實錄
[집필자]
정병섭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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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31 | 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