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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직조(鄭稷朝)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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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자상(子相)
생년1817(순조 17)
졸년1881(고종 18)
시대조선후기
본관동래(東萊)
활동분야문신
정세억(鄭世億)
생부정세교(鄭世敎)

[상세내용]

정직조(鄭稷朝)
1817년(순조 17)~1881년(고종 18)(주1)
졸년
東萊鄭氏族譜를 참고하여 졸년 추가함.
. 조선 후기 문신. 자는 자상(子相)이다. 본관은 동래(東萊)이고, 출신지는 서울이다.

증조부는 영의정(領議政) 정존겸(鄭存謙)이고, 조부는 정치수(鄭致綏)이며, 부친 정세교(鄭世敎)의 차남으로 태어나 정세억(鄭世億)에게 입양(入養)되었다. 외조부는 한산이씨 현감(縣監) 이규열(李奎說)과 청주양씨 양대우(楊大宇)이고, 생외조부는 김정순(金鼎淳)이며, 처부는 광산김씨 김영익(金永翼)과 전주이씨 이인오(李寅五)와 전주이씨 이장호(李章浩)이다.

1861년(철종 12) 신유 식년시(式年試) 문과에 급제하였다.

벼슬은 1862년(철종 13) 부안현감(扶安縣監)을 역임하고, 같은 해 홍문록(弘文錄)에 들었고, 1863년에 도당록(都堂錄)에 뽑혔다.

1864년(고종 1) 도청(都廳)으로서 가자(加資) 되었다. 1868년(고종 5) 암행어사(暗行御史)로 다녀와 경주부윤(慶州府尹)으로 나갔다. 1869년(고종 6) 이조참의(吏曹參議)가 되었다. 1871년(고종 8) 봉산군수(鳳山郡守)로 나갔다.

1875년(고종 12) 대거승지(對擧承旨)로서 가자(加資) 되었다. 1879년(고종 16) 이조참판(吏曹參判)에 이르렀으며, 1880년(고종 17) 사은 겸 동지부사(謝恩兼冬至副使)로 청(淸)나라에 갔다가 이듬해 돌아 왔다.

[참고문헌]

承政院日記
哲宗實錄
高宗實錄

[집필자]

정원종(鄭源宗)
수정일수정내역
2011-10-31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