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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문(李在聞)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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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도여(嶌汝)
생년1817(순조 17)
졸년?(미상)
시대조선후기
본관용인(龍仁)
활동분야문신
이병호(李秉祜)

[상세내용]

이재문(李在聞)
1817년(순조 17)~미상. 조선 후기 문신. 자는 도여(嶌汝)이다. 본관은 용인(龍仁)이다. 거주지는 한양(漢陽: 현 서울)이다.

증조부는 이의즙(李宜楫)이고, 조부는 이보양(李普讓)이며, 부친은 현감(縣監) 이병호(李秉祜)이다. 외조부는 박사룡(朴師龍)이고, 처부는 김재의(金在義)이다.

1849년(헌종 15) 식년시에서 병과 21위로 문과 급제하였다. 관직은 양산군수(梁山郡守)‧사간원대사간(司諫院大司諫)‧우승지(右承旨) 등을 역임하였다.

1853년(철종 4)에 도당록(都堂錄) 권점(圈點)을 통해 홍문관(弘文館) 관원으로 뽑혔다. 1858년(철종 9) 양산군수 재임 시절의 실정(失政)이 경상좌도암행어사(慶尙左道暗行御史) 임응준(任應準)의 서계(書啓)를 통해 조정에 알려져 파직되었다. 1862년(철종 13)에는 서장관(書狀官)의 직무로 정사(正使) 이의익(李宜翼)과 부사(副使) 박영보(朴永輔)를 수행하여 청나라에 사행을 다녀왔다. 1863년(철종 14)에 왕실 족보 『선원보첩(璿源譜牒)』을 간략하게 기록한 『선원보략(璿源譜略)』을 수정할 때 감인(監印)을 수행한 공로를 인정받아 가자(加資)되었다. 1864년(고종 1) 우레와 벼락의 재이(災異)가 발생했을 때 임금의 권면(勸勉)을 청하는 연명차자(聯名箚子)가 홍문관에서 올라갔는데, 여기에 동참하였다.

[참고문헌]

縉紳八世譜
國朝文科榜目
八道總錄
哲宗實錄
高宗實錄

[집필자]

이은영
수정일수정내역
2011-10-31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