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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운(李晩運)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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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문오(文五)
호(號)쌍취(雙翠)
생년1815(순조 15)
졸년1886(고종 23)
시대조선후기
본관진성(眞城)
활동분야문신
이휘정(李彙廷)

[상세내용]

이만운(李晩運)
1815년(순조 15)~1886년(고종 23). 조선 후기 문신. 자는 문오(文五)이고 호는 쌍취(雙翠)이다. 본관은 진성(眞城)이고, 경상북도 예안(禮安) 출신이다.

증조부는 이구용(李龜容)이고, 조부는 이언순(李彦淳)이며, 부친은 이휘정(李彙廷)이다. 외조부는 채응우(蔡應禹)이고, 처부는 의성김씨 능주목사(綾州牧使) 김진화(金鎭華)이다.

정재(定齋) 유치명(柳致明)의 문인으로, 1843년(헌종 9) 계묘 식년시(式年試)에 생원 장원(壯元)으로 합격하였고, 1844년(헌종 10) 갑진 증광시(增廣試) 문과에 급제하였다.

1844년 괴원부정자(槐院副正字), 1846년(헌종 12) 초계문신에 발탁되고 지평, 정언, 헌납, 홍문관수찬, 교리, 사간, 장령을 거쳐 1858년(철종 9)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라 대사간(大司諫)이 되었다.

병조참의, 이조참의, 좌승지, 우승지 등을 역임하였고, 1871년(고종 8) 가선대부(嘉善大夫)가 되어 한성우윤, 예조참판, 이조참판이 지냈다.

1874년(고종 11) 암행어사 박정양(朴定陽)이 경주부윤으로 있을 때 죄인을 제때에 잡지 못했다고 탄핵하여 전라도 무주에 유배되었다가 다음 해에 풀려났다.

경주부윤으로 있을 때 김유신(金庾信) 장군의 집터에 유허비(遺虛碑)를 세우고 비문을 찬(撰)하였다.

[참고문헌]


[집필자]

장달수
수정일수정내역
2011-10-31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