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우철(洪祐喆)
[요약정보]
| UCI | G002+AKS-KHF_13D64DC6B0CCA0B1813X0 |
| 자(字) | 윤명(允明) |
| 생년 | 1813(순조 13) |
| 졸년 | ?(미상) |
| 시대 | 조선후기 |
| 본관 | 풍산(豊山) |
| 활동분야 | 문신 |

| 부 | 홍현주(洪顯周) |

[상세내용]
홍우철(洪祐喆)
1813년(순조 13)~미상. 조선 후기 문신. 자는 윤명(允明)이다. 본관은 풍산(豊山)이다.
회곡(晦谷) 홍중기(洪重箕)의 후손으로, 고조는 이조판서(吏曹判書) 정혜공(靖惠公) 홍상한(洪象漢)이고, 증조부는 홍낙최(洪樂㝡)이며, 조부는 참의(參議) 홍인모(洪仁謨)이다. 부친 영명위(永明尉) 홍현주(洪顯周)와 모친 정조(正祖)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인은 이정신(李鼎臣)의 딸이다.
1830년(순조 30) 왕실의 상사(喪事) 때 종척집사(宗戚執事)로 임명되었다. 1831년(순조 31) 성균관(成均館)에서 실시한 구일제(九日製)에 참여하여 수석을 차지하였고, 전시(殿試)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받았으며, 1834년(순조 34) 식년시 문과에서 병과 7위로 급제하였다.
1836년(헌종 2)에는 품계가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는데, 삼촌인 좌의정(左議政) 홍석주(洪奭周)가 임금에게 지나친 처사라며 환수(還收)를 청원하였다. 그 결과 품계는 낮아졌지만, 그의 집안은 겸손과 근검 등의 미덕으로 칭송을 받았다. 1848년(헌종 14) 이조참의(吏曹參議)에 임명되었고, 1850년(철종 1) 경기관찰사(京畿觀察使)에 임명되었다. 이후 강화부유수(江華府留守)‧성균관대사성(成均館大司成) 등을 역임하였다.
회곡(晦谷) 홍중기(洪重箕)의 후손으로, 고조는 이조판서(吏曹判書) 정혜공(靖惠公) 홍상한(洪象漢)이고, 증조부는 홍낙최(洪樂㝡)이며, 조부는 참의(參議) 홍인모(洪仁謨)이다. 부친 영명위(永明尉) 홍현주(洪顯周)와 모친 정조(正祖)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인은 이정신(李鼎臣)의 딸이다.
1830년(순조 30) 왕실의 상사(喪事) 때 종척집사(宗戚執事)로 임명되었다. 1831년(순조 31) 성균관(成均館)에서 실시한 구일제(九日製)에 참여하여 수석을 차지하였고, 전시(殿試)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받았으며, 1834년(순조 34) 식년시 문과에서 병과 7위로 급제하였다.
1836년(헌종 2)에는 품계가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는데, 삼촌인 좌의정(左議政) 홍석주(洪奭周)가 임금에게 지나친 처사라며 환수(還收)를 청원하였다. 그 결과 품계는 낮아졌지만, 그의 집안은 겸손과 근검 등의 미덕으로 칭송을 받았다. 1848년(헌종 14) 이조참의(吏曹參議)에 임명되었고, 1850년(철종 1) 경기관찰사(京畿觀察使)에 임명되었다. 이후 강화부유수(江華府留守)‧성균관대사성(成均館大司成) 등을 역임하였다.
[참고문헌]
國朝榜目
純祖實錄
縉紳八世譜
哲宗實錄
憲宗實錄
純祖實錄
縉紳八世譜
哲宗實錄
憲宗實錄
[집필자]
정병섭
| 수정일 | 수정내역 |
|---|---|
| 2011-10-31 | 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