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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헌교(鄭獻敎)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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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치승(穉承)
생년1811(순조 11)
졸년?(미상)
시대조선후기
본관온양(溫陽)
활동분야문신
정성우(鄭性愚)

[상세내용]

정헌교(鄭獻敎)
1811년(순조 11)~미상. 조선 후기 문신. 자는 치승(稚承)‧치승(穉承)이다. 본관은 온양(溫陽)이고, 거주지는 경기도 장단(長湍)이다.

증조부는 정창사(鄭昌師)이고, 조부는 정민시(鄭民始)이며, 부친은 통훈대부(通訓大夫) 행연안도호부사(行延安都護府使) 정성우(鄭性愚)이다. 외조부는 홍경규(洪景圭)이다.

1844년(헌종 10) 증광시 진사 3등 20위로 합격하였고, 1848년(헌종 14) 증광시 문과에 병과 1위로 급제하였다. 관직은 홍문관수찬(弘文館修撰)‧사간원대사간(司諫院大司諫)‧이조참의(吏曹參議)‧전라도관찰사(全羅道監察使)‧전라감사(全羅監司)‧동래부사(東萊府使) 등을 역임하였다.

1853년(철종 4) 철종이 창릉(昌陵)과 전계대원군(全溪大院君)과 용성부대부인(龍城府大夫人) 묘소에서 직접 제수를 할 때 수찬으로서 집례(執禮)를 담당하여 가자(加資)되었다. 1860년(철종 11) 동래부사 시절, 관백(關白)의 승습(承襲)을 알리러 온 일본인 차사(差使)가 러시아[魯西亞]‧영국[英咭利]‧프랑스[佛蘭西]‧미국[亞墨利加]의 네 나라와 일본이 교류를 하려 한다는 것을 알리는 서계(書契)를 가져왔으니 신속하게 서계로 답을 내려달라는 장계(狀啓)를 올렸다. 1862년(철종 13) 뇌물을 받은 전라도 화순현감(和順縣監) 서상복(徐相復)을 파직해줄 것을 청하는 상소를 올렸고, 같은 해에 은진(恩津)에서 민란이 일어나 수천 명의 은진 백성이 여산부(礪山府)까지 넘어와서 인가(人家)에 불을 지른 일이 벌어지자 상소를 올렸다. 또 부안현(扶安縣) 백성이 관리들을 죽이고, 선무사(宣撫使)들을 가로막고 금구현(金溝縣) 백성의 집을 불태우는 민란이 일어난 죄를 물어 부안현감 정직조(鄭稷朝)와 금구현령 민세호(閔世鎬)를 파직시키도록 하여 윤허를 받았다. 그 밖에 전라도 지역에서 일어난 많은 민란에 대해 정황보고를 하여 백성을 제대로 보살피지 않아서 일어난 민란에 대해 책임질 사람들을 파직하게 하였다. 1863년(고종 즉위년) 청나라에 철종의 부고를 알리고 시호를 받음과 동시에 고종의 등극을 알리기 위한 고부청시(告訃請諡) 겸 승습주청사부사(兼承襲奏請使副使) 사신으로 정해졌으나, 병 때문에 임긍수(林肯洙)가 대신 다녀왔다.

[참고문헌]

CD-ROM 司馬榜目
國朝文科榜目國朝寶鑑
哲宗實錄
高宗實錄

[집필자]

이은영
수정일수정내역
2011-10-31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