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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시협(安時協)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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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치공(致恭)
생년1811(순조 11)
졸년?(미상)
시대조선후기
본관순흥(順興)
활동분야문신
안춘겸(安春謙)

[상세내용]

안시협(安時協)
1811년(순조 11)~미상. 조선 후기 문신. 자는 치공(致恭)이다. 본관은 순흥(順興)이고, 출신지는 평안남도 안주(安州)이다.

증조부는 안득일(安得一)이고, 조부는 안정갑(安正甲)이며, 부친은 안춘겸(安春謙)이다. 외조부는 김문덕(金文德)이다. 1851년(철종 2) 정시 병과 9위로 문과 급제했다.

1857년(철종 8) 전라도제원찰방(全羅道濟原察訪)으로 있을 때, 탐오(貪汚)한 죄에 대해 전라우도암행어사(全羅右道暗行御使) 성이호(成彛鎬)가 탄핵하여 벌을 받았다. 1864년(고종 1) 5월에 예조정랑(禮曹正郞)이 되었다. 1874년(고종 11) 고향인 평안도 안주(安州)에서 좌수(座首)로 있으면서 장리(長吏)를 능멸하고, 백성을 핍박하여 재물을 수탈할 것을 평안감사(平安監司) 신응조(申應朝)가 장계(狀啓)로 알려 의금부나장(義禁府拏將)에 의해 서울로 체포되어 경상도 창원부(昌原府)로 유배되었다. 1875년(고종 12) 의금부(義禁府)가 아뢰어 창원에서 풀려났고, 이조가 아뢰어 죄명이 삭제되어 병조(兵曹)의 부사과(副司果)에 서용되었다. 1877년(고종 14) 교서관판교(校書館判校)에 임명되었다. 같은 해 10월 평안도안주좌수로 있을 때에 공사(公私)의 전곡(錢穀)을 훔치고, 부유한 백성의 재물을 빼앗기 위해 강제로 죄명을 뒤집어 씌어서 국결(國結)을 훔치는 등 탐오한 짓을 하여 병사(兵使)와 감사(監司) 및 수령이 타이르고 매질하여도 듣지 않아 사적(仕籍)에서 영구히 지우고 먼 지역으로 유배할 것을 사헌부장령(司憲府掌令) 김릉(金稜)이 상소하였고, 이어 10월 28일 의정부가 아뢰어 경상도 사천현(泗川縣)에 유배되었다. 1879년(고종 16) 죄명을 도류안(徒流案)에서 삭제하는 은혜를 받아 배소에서 풀려났다가, 1881년(고종 18) 평안감사 민영위(閔泳緯)가 여전히 탐오한 짓으로 백성을 괴롭힌다며 올린 장계에 의해 의금부나장에게 잡혀 서울로 다시 압송되었다. 1882년(고종 19) 병조의 부호군(副護軍)에 서용되고,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가설(加設)에 서용되었다. 1883년(고종 20) 몇 번의 처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고을과 군영에서 패악한 짓을 하며 행패를 부려 사람들이 살기 어려운 먼 섬으로 유배하고 사면령이 내려도 풀려나지 못하도록 하였다. 안주(安州)에 사는 유학(幼學) 김필연(金必淵)이 상소하여 죄를 지었음에도 자기의 죄를 뉘우치지 않고, 더욱 패악한 짓을 하였으므로 평안도의 백성을 위해서라도 더 이상 용서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같은 해 4월 전라도 강진현(康津縣)의 신지도(薪智島)로 유배되었다가 1884년(고종 21) 10월에 정배지에서 풀려났다.

[참고문헌]


[집필자]

박경이
수정일수정내역
2011-10-31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