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복신(李福信)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774BCF5C2E0B1808X0 |
자(字) | 유여(留餘) |
생년 | 1808(순조 8) |
졸년 | ?(미상) |
시대 | 조선후기 |
본관 | 덕수(德水) |
활동분야 | 문신 |

부 | 이노익(李魯益) |
생부 | 이노직(李魯直) |

[관련정보]
[상세내용]
이복신(李福信)
1808년(순조 8)~미상. 조선 후기 문신. 자는 유여(留餘)이다, 본관은 덕수(德水)이고, 출신지는 한양(漢陽)이다. 증조부는 이연(李演)이고, 조부는 이병모(李秉模)이다. 부친은 예조판서(禮曹判書) 자헌대부(資憲大夫) 이노익(李魯益)이고, 모친은 심풍지(沈豊之)의 딸이다. 생부는 이노직(李魯直)이다. 부인은 김리재(金履載)의 딸이다. 형은 이돈신(李敦信)이고, 동생은 이석신(李錫信)이다.
1828년(순조 28) 식년시에 진사 3등 38위로 합격하였고, 1829년(순조 29) 정시에서 병과 21위로 문과 급제하였다.
1828년(순조 28) 추도기유생(秋到記儒生) 시험 때 제술(製述)에 수석으로 합격하여 직부전시(直赴殿試)되었다. 영부사(領府事)를 역임했던 이병모의 서자 이노근(李魯近)과는 친숙질(親叔姪) 사이인데, 이노근은 적가(嫡家)를 원수처럼 여긴 인물이다. 이노근은 적가에서 쫓겨나고 족보에서 삭제를 당한 것에 원한을 품고 적질(嫡姪)인 이복신을 모해하고자 흉서(凶書)를 지어내어, 1829년(순조 29) 과거시험지에 썼는데, 봉내(封內)할 때 이복신과 형제, 친인척의 이름을 나열해서 답안지를 제출하였다. 그러나 이노근은 죄가 알려지면서 사형을 당하였다. 임금이 이복신의 연좌 여부를 하문할 때 영돈녕(領敦寧) 김조순(金祖淳)‧판부사(判府事) 남공철(南公轍) 등이 연좌하지 말 것을 청하면서 혐의에서 풀려났다. 그러나 특별히 연좌를 모면한 은혜를 입었는데도 가주서(假注書)가 된 후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직무를 유기하였다가 유배시켰다.
1828년(순조 28) 식년시에 진사 3등 38위로 합격하였고, 1829년(순조 29) 정시에서 병과 21위로 문과 급제하였다.
1828년(순조 28) 추도기유생(秋到記儒生) 시험 때 제술(製述)에 수석으로 합격하여 직부전시(直赴殿試)되었다. 영부사(領府事)를 역임했던 이병모의 서자 이노근(李魯近)과는 친숙질(親叔姪) 사이인데, 이노근은 적가(嫡家)를 원수처럼 여긴 인물이다. 이노근은 적가에서 쫓겨나고 족보에서 삭제를 당한 것에 원한을 품고 적질(嫡姪)인 이복신을 모해하고자 흉서(凶書)를 지어내어, 1829년(순조 29) 과거시험지에 썼는데, 봉내(封內)할 때 이복신과 형제, 친인척의 이름을 나열해서 답안지를 제출하였다. 그러나 이노근은 죄가 알려지면서 사형을 당하였다. 임금이 이복신의 연좌 여부를 하문할 때 영돈녕(領敦寧) 김조순(金祖淳)‧판부사(判府事) 남공철(南公轍) 등이 연좌하지 말 것을 청하면서 혐의에서 풀려났다. 그러나 특별히 연좌를 모면한 은혜를 입었는데도 가주서(假注書)가 된 후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직무를 유기하였다가 유배시켰다.
[참고문헌]
司馬榜目國朝榜目
純祖實錄
純祖實錄
[집필자]
구은희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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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31 | 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