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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병수(洪秉壽)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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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치수(稚秀)
생년1807(순조 7)
졸년?(미상)
시대조선후기
본관남양(南陽[唐])
활동분야문신
홍학연(洪學淵)

[상세내용]

홍병수(洪秉壽)
1807년(순조 7)~미상. 조선 후기 문신. 자는 치수(稚秀)이다. 본관은 남양(南陽[唐])이다. 거주지는 경기도 양주(楊州)이다.

증조부는 홍응운(洪應運)이고, 조부는 이조참판(吏曹參判) 홍경안(洪景顔)이며, 부친은 홍학연(洪學淵)이다. 외조부는 이의강(李義綱)이고, 처부는 현감(縣監) 신순(申淳)이다.

1847년(헌종 13) 정시에 병과 2위로 문과 급제하였다. 관직은 도청부사과(都廳副司果)‧양주목사(楊州牧使)‧이조참의(吏曹參議)‧예방승지(禮房承旨) 등을 역임하였으며, 품계는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다.

1847년(헌종 13) 정시로 과거 시험을 치를 때 부친이 높은 관직에 있다는 이유로 과거장에 나오지 않고 고향에서 시권(試券)을 올린 일이 드러나 입신(立身)하는 처음부터 임금을 속이려 한다는 임금의 질책이 있었으나 급제에서 취소되지는 않았다. 1848년(헌종 14)에는 홍문관(弘文館) 관리를 뽑는 본관록(本館錄)에서 8점(點)을 받았으며, 도당회권(都堂會圈)에서는 4점(點)을 받았다. 1851년(철종 2) 왕의 친영례(親迎禮) 때, 도청부사과(都廳副司果)의 소임을 수행하여 통정대부에 가자(加資)되었다. 1862년(철종 13)에 승지로 재직하던 중, 국왕의 행차 때 투석한 죄인 조만준(趙萬俊)을 친국(親鞫)하는 데에 영부사(領府事) 정원용(鄭元容)‧좌의정(左議政) 박회수(朴晦壽) 등과 함께 참여하였다. 슬하에 아들 홍보섭(洪輔燮)을 두었다.

[참고문헌]

縉紳八世譜
國朝文科榜目
八道總錄
憲宗實錄
哲宗實錄

[집필자]

이은영
수정일수정내역
2011-10-31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