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치검색 표제어 전체
검색
김학초(金學初)

[요약정보]

UCIG002+AKS-KHF_13AE40D559CD08B1807X0
자(字)치복(稚復)
생년1807(순조 7)
졸년?(미상)
시대조선후기
본관강릉(江陵)
활동분야문신
김계혼(金啓渾)
생부김계연(金啓沇)

[상세내용]

김학초(金學初)
1807년(순조 7)~미상. 조선 후기의 문신. 자는 치복(稚復)이다. 본관은 강릉(江陵)이다.

증조부는 병조(兵曹)‧예조(禮曹)‧이조(吏曹)의 판서를 지낸 김상성(金尙星)이고, 조부는 형조(刑曹)‧이조의 판서를 지낸 김노진(金魯鎭)이다. 부친은 김계혼(金啓渾)이고, 생부는 김계연(金啓沇)이다.

1837년(헌종 3) 식년시에 진사 3등 26위로 합격하였고, 1848년(헌종 14) 증광시 문과에 병과 2위로 급제하였다. 같은 해 왕의 특명에 의해 임시로 행해지는 유생응제(儒生應製)에서 수석을 차지하여 전시(殿試)에 직접 응시하게 되었다. 1853년(철종 4)에 홍문관(弘文館)의 교리(校理)‧수찬(修撰)을 뽑는 추천기록인 관록(館錄)‧도당록(都堂錄)에 기록되어 홍문관의 관리로 뽑히게 되었다. 1858년(철종 9)에 선교관부사과(宣敎官副司果)를 지냈고, 1863년(철종 14)에는 이조참의(吏曹參議)에 임명되었다. 1865년(고종 2)에는 성균관대사성(成均館大司成)에 제수되었고, 다음 해 부호군(副護軍)으로서 한 품계 승급하였고, 동지춘추관사(同知春秋館事)에 임명되었다. 1871년(고종 8)에는 이조참판(吏曹參判)에 임명되었고, 1874년(고종 11)에는 동지의금부사(同知義禁府事)를 지냈으며, 같은 해와 다음 해에 다시 이조참판에 제수되었다. 1873년(고종 10) 강릉김씨의 족보인 『계유대보(癸酉大譜)』를 발간하였다.

[참고문헌]

憲宗實錄
哲宗實錄
高宗實錄
承政院日記

[집필자]

손용석
수정일수정내역
2011-10-31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