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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교성(尹敎成)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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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경도(景道)
생년1805(순조 5)
졸년?(미상)
시대조선후기
본관파평(坡平)
활동분야문신
윤응대(尹應大)
생부윤정대(尹鼎大)

[상세내용]

윤교성(尹敎成)
1805년(순조 5)~미상. 조선 후기 문신. 자는 경도(景道)이다. 본관은 파평(坡平)이다.

판서(判書) 윤양래(尹陽來)의 후손으로, 고조는 현령(縣令) 윤지언(尹之彦)이고, 증조부는 승지(承旨) 윤면헌(尹勉憲)이며, 조부는 윤수익(尹守翼)이다. 부친은 승지(承旨) 윤응대(尹應大)이고, 모친은 교리(校理) 이도겸(李度謙)의 딸이다. 생부 윤정대(尹鼎大)와 생모 부사(府使) 송문회(宋文晦)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인은 이광승(李光承)의 딸이다.

1830년(순조 30)에는 중희당(重熙堂)에서 시행된 일차유생강(日次儒生講)에서 수석을 차지하기도 하였고, 1831년(순조 31) 식년시 문과에서 을과로 급제하였다.

1840년(헌종 6)에는 홍문록(弘文錄)에 선발되었다. 1842년(헌종 8)에는 장릉(長陵)‧인릉(仁陵)의 친제(親祭)에 대축(大祝)으로 참여한 공으로 품계를 올려 받았다. 1847년(헌종 13)에는 사간원대사간(司諫院大司諫)에 임명되었고, 이후 철종과 고종 때에도 개성부유수(開城府留守)‧성균관대사성(成均館大司成)‧예방승지(禮房承旨)‧예조판서(禮曹判書)‧이조참판(吏曹參判)‧한성부판윤(漢城府判尹)‧형조판서(刑曹判書) 등 요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참고문헌]

國朝文科榜目
純祖實錄
縉紳八世譜
憲宗實錄

[집필자]

정병섭
수정일수정내역
2011-10-31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