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응태(沈膺泰)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2ECC751D0DCB1803X0 |
자(字) | 윤림(允林) |
자(字) | 사원(士元) |
생년 | 1803(순조 3) |
졸년 | ?(미상) |
시대 | 조선후기 |
본관 | 청송(靑松) |
활동분야 | 문신 |

부 | 심진(沈鉁) |

[관련정보]
[상세내용]
심응태(沈膺泰)
1803년(순조 3)~미상. 조선 후기 문신. 자는 원림(元林)‧윤림(允林)‧사원(士元)(주1)
이다. 본관은 청송(靑松)이다.
병판(兵判) 사양당(四養堂) 심충겸(沈忠謙)의 후손으로, 증조부는 이조판서(吏曹判書) 심공(沈珙)이며, 조부는 심명억(沈命億)이다. 부친 통정대부(通政大夫) 대구진관병마첨절제사(大丘鎭管兵馬僉節制使) 심진(沈鉁)과 모친 이성양(李性養)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형은 심계태(沈啓泰)‧심민태(沈民泰)이고, 동생은 심만태(沈晩泰)이다. 부인은 현감(縣監) 정지영(鄭趾榮)의 딸이다.
1834년(순조 34) 식년시에서 진사 3등 52위로 합격하였고, 1835년(헌종 1) 별시 문과에서 병과 2위로 급제하였다.
1840년(헌종 6) 본관록(本館錄)에 선발되었고,(주2)
1842년(헌종 8) 함경도암행어사(咸鏡道暗行御史)에 임명되어, 각 지방 관리들의 비리를 적발하였다.(주3)
1849년(철종 즉위년) 서장관(書狀官)에 임명되어 중국에 다녀왔고,(주4)
1850년(철종 1) 작헌례(酌獻禮)에 참여하여, 품계를 올려 받았다.(주5)
1860년(철종 11) 성균관대사성(成均館大司成)에 임명되었고,(주6)
이후 이조참의(吏曹參議) 등을 역임하였다.
1862년(철종 13)에는 아경(亞卿)으로 승격되었다.(주7)
자 출처 |
원림(元林):문과방목, 윤림(允林):문음보, 사원(士元):사마방목. |
병판(兵判) 사양당(四養堂) 심충겸(沈忠謙)의 후손으로, 증조부는 이조판서(吏曹判書) 심공(沈珙)이며, 조부는 심명억(沈命億)이다. 부친 통정대부(通政大夫) 대구진관병마첨절제사(大丘鎭管兵馬僉節制使) 심진(沈鉁)과 모친 이성양(李性養)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형은 심계태(沈啓泰)‧심민태(沈民泰)이고, 동생은 심만태(沈晩泰)이다. 부인은 현감(縣監) 정지영(鄭趾榮)의 딸이다.
1834년(순조 34) 식년시에서 진사 3등 52위로 합격하였고, 1835년(헌종 1) 별시 문과에서 병과 2위로 급제하였다.
1840년(헌종 6) 본관록(本館錄)에 선발되었고,(주2)
홍문록 선발 |
『헌종실록』 7권, 6년 3월 3일(계사) 1번째기사. |
암행어사 활동 |
『헌종실록』 9권, 8년 9월 3일(무신) 1번째기사. |
서장관 임명 |
『철종실록』 1권, 즉위년 10월 20일(갑신) 1번째기사. |
작헌례 참여 |
『철종실록』 2권, 1년 6월 18일(무인) 1번째기사. |
성균관대사성 임명 |
『철종실록』 12권, 11년 9월 1일(신묘) 3번째기사. |
1862년(철종 13)에는 아경(亞卿)으로 승격되었다.(주7)
아경 승격 |
『철종실록』 14권, 13년 8월 27일(정축) 3번째기사. |
[참고문헌]
國朝榜目
文蔭譜
司馬榜目
哲宗實錄
憲宗實錄
文蔭譜
司馬榜目
哲宗實錄
憲宗實錄
[집필자]
정병섭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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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31 | 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