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류(鄭鎏)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2C815B958FFFFB1801X0 |
자(字) | 공려(公麗) |
생년 | 1801(순조 1) |
졸년 | 1864(고종 1) |
시대 | 조선후기 |
본관 | 영일(迎日)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정재수(鄭在洙) |
[상세내용]
정류(鄭鎏)
1801년(순조 1)∼1864년(고종 1).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공려(公麗). 첨지중추부사 정재수(鄭在洙)의 아들이다.
1831년(순조 31)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초직은 승문원부정자였고, 효릉별검(孝陵別檢)을 거쳐 1835년(헌종 1) 성균관전적이 되었다.
이후 10여년간 홍문관 수찬‧교리 등 주요청직을 편력하면서 문명을 인정받아 1850년(철종 1) 사은사의 서장관으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이 연경사행후에도 사복시정‧홍문관부응교‧사헌부집의‧군자감정을 역임하였고, 1854년 부모공양을 위하여 외직을 맡았다.
이후 부승지‧대사간‧공조참판‧동지춘추관사를 역임하였다.
1831년(순조 31)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초직은 승문원부정자였고, 효릉별검(孝陵別檢)을 거쳐 1835년(헌종 1) 성균관전적이 되었다.
이후 10여년간 홍문관 수찬‧교리 등 주요청직을 편력하면서 문명을 인정받아 1850년(철종 1) 사은사의 서장관으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이 연경사행후에도 사복시정‧홍문관부응교‧사헌부집의‧군자감정을 역임하였고, 1854년 부모공양을 위하여 외직을 맡았다.
이후 부승지‧대사간‧공조참판‧동지춘추관사를 역임하였다.
[참고문헌]
哲宗實錄
國朝榜目
蘆沙集
國朝榜目
蘆沙集
[집필자]
배종무(裵鍾茂)
대표명 | 정류(鄭鎏) |
성명 | 정류(鄭鎏) |
성명 : "정류(鄭鎏)"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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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