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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백수(任百秀)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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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치호(稚皓)
생년1797(정조 21)
졸년?(미상)
시대조선후기
본관풍천(豊川)
활동분야문신
임연상(任淵常)

[상세내용]

임백수(任百秀)
1797년(정조 21)~미상. 조선 후기 문신. 자는 치호(稚皓)이다. 본관은 풍천(豊川)이다.

증조부는 임선(任珗)이고, 조부는 한성부판윤(漢城府判尹)과 공조판서(工曹判書) 등을 역임한 임희존(任希存)이며, 부친은 임연상(任淵常)이다.

1825년(순조 25) 식년시 진사 2등 1위로 입격했고, 1839년(헌종 5) 정시 병과 9위로 문과 급제하였다.

1843년(헌종 9) 사간원대사간(司諫院大司諫)이 되었고, 이조참판(吏曹參判)을 거쳐 다시 사간원대사간에 임명되었다. 1857년(철종 8) 경평군(慶平君) 이호(李晧)‧서장관(書狀官) 김창수(金昌秀)와 함께 부사(副使)의 직책을 맡고 청나라에 다녀왔다. 1861년(철종 12) 6월 시국의 제반사에 대한 간언이 없는 것이 문제가 되어서 중화부(中和府)에 유배되었지만, 한 달 후에 방면되고, 같은 해 12월에 다시 사간원대사간에 임명되었다. 이후 한성부판윤‧형조판서(刑曹判書)‧예조판서(禮曹判書)‧사헌부대사헌(司憲府大司憲)‧판의금부사(判義禁府事)‧이조판서(吏曹判書) 등을 역임했다.

고령을 이유로 현직에서 물러난 후, 상호군(上護軍)‧봉조하(奉朝賀)에 제수되었다.

슬하에는 5남 1녀를 두었는데, 아들은 임응준(任應準)‧임사준(任思準)‧임경준(任慶準)‧임무준(任懋準)‧임덕준(任悳準)이다.

청나라 사행당시의 일화가 『대동기문(大東奇聞)』에 전해진다.

[참고문헌]

承政院日記
純祖實錄
憲宗實錄
哲宗實錄
高宗實錄
大東奇聞

[집필자]

손용석
수정일수정내역
2011-10-31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