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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전(許傳)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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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이로(以老)
호(號)성재(性齋)
시호(諡號)문헌(文憲)
생년1797(정조 21)
졸년1886(고종 23)
시대조선후기
본관양천(陽川)
활동분야문신 > 문신
허형(許珩)
출생지포천

[상세내용]

허전(許傳)
1797년(정조 21)∼1886년(고종 23).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양천(陽川). 자는 이로(以老), 호는 성재(性齋). 포천 출생. 정언 허형(許珩)의 아들이다.

황덕길(黃德吉)의 문인으로 성호학파(星湖學派)의 계승자가 되었다.

1835년(헌종 1) 39세에 비로소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840년 기린도찰방(麒麟道察訪), 1844년 전적(典籍)지평(持平)을 거쳐 1847년에 함평현감으로 나갔다가 1850년(철종 1)에 교리경연시독관(經筵侍讀官)춘추관기사관을 역임하였다.

이로부터 경연에 참여하여 국왕에게 유교경전을 해설하는 학자적 관료로서의 구실을 하게 되었다.

1855년에 당상관이 되어 우부승지병조참의에 이르렀다.

1862년 진주민란을 비롯하여 전국적으로 민란의 소요가 일어났을 때 3정책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1864년(고종 1) 김해부사에 부임하여 향음주례를 행하고 향약을 강론하여 유도를 크게 일으켰다.

또, 공무의 여가를 이용하여 젊은 선비들을 모아 직접 교육을 하였고, 임기를 마치고 서울에 돌아와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올랐다. 이어 1876년 정헌대부(正憲大夫), 1886년에는 숭록대부(崇祿大夫)에 이르렀다.

이익(李瀷)안정복(安鼎福)황덕길을 이은 기호(畿湖)의 남인학자로서 당대유림의 종장(宗匠)이 되어 영남 퇴계학파를 계승한 유치명(柳致明)과 더불어 학문적으로 쌍벽을 이루었다.

그의 사상은 주로 경연에서 경의(經義)와의 관련에서 항상 실심(實心)‧실정(實政)을 강조하였을 뿐 아니라 현실에 투철하여 구체적인 개혁안을 제시하였다.

저서로는 『성재집』『종요록(宗堯錄)』『철명편(哲命編)』이 있고, 선비의 생활의식을 집대성한 『사의(士儀)』가 있다. 시호는 문헌(文憲)이다.

[참고문헌]

哲宗實錄
承政院日記
國朝榜目
許傳全集解題(李佑成, 亞細亞文化社, 1979)

[집필자]

이성무(李成茂)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2010-02-15[고종실록] 1888년(고종 25년) 11월 7일조를 참고하여 시호 문헌(文憲) 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