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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백능(任百能)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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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사행(士行)
생년1795(정조 19)
졸년?(미상)
시대조선후기
본관풍천(豊川)
활동분야문신
임만상(任晩常)
생부임기상(任耆常)

[상세내용]

임백능(任百能)
1795년(정조 19)~미상. 조선 후기 문신. 자는 사행(士行)이다. 본관은 풍천(豊川)이다.

참판(參判) 임유후(任有後)의 후손으로, 고조는 임치원(任致遠)이고, 증조부는 임상효(任尙孝)이며, 조부는 임약(任若)이다. 부친은 임만상(任晩常)이고, 모친은 이종한(李宗翰)의 딸이다. 생부 임기상(任耆常)과 생모 조시범(趙時範)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인은 윤관대(尹觀大)의 딸이다.

1822년(순조 22) 식년시 문과에서 병과 26위로 급제하였다.

1839년(헌종 5) 헌납(獻納)으로 재직 중이었는데, 임금에게 상소를 올려 이조판서(吏曹判書) 송면재(宋冕載)의 행실을 거론하며 파직을 건의하였다. 그러나 언사가 지나치다는 이유로 임금에게 질책을 받았다. 1840년(헌종 6) 정언(正言) 이회영(李晦榮)이 송면재를 재차 탄핵하였다가 임금의 진노를 사게 되어 벼슬이 삭탈되었고, 그 또한 연좌되어 벼슬이 삭탈되었다. 1853년(철종 4) 도당록(都堂錄)에 선발되었고, 1855년(철종 6) 천릉(遷陵) 등의 왕실제사 때 봉표관(封標官)으로 참여하여, 품계를 올려 받았다. 1856년(철종 7) 사간원대사간(司諫院大司諫)에 임명되었다.

[참고문헌]

國朝榜目
縉紳八世譜
哲宗實錄
憲宗實錄

[집필자]

정병섭
수정일수정내역
2011-10-31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