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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문(禹錫文)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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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자성(子成)
호(號)아천(啞川)
생년1793(정조 17)
졸년1860(철종 11)
시대조선후기
본관단양(丹陽)
활동분야문신 > 문신

[상세내용]

우석문(禹錫文)
1793년(정조 17)∼1860년(철종 11). 조선 후기 문신‧학자. 자는 자성(子成)이고, 호는 아천(啞川)이다. 본관은 단양(丹陽)이고, 거주지는 경상남도 창녕(昌寧)이다.

문강공 우국진의 후손으로, 증조부는 우중하(禹重夏)이고, 조부는 우상호(禹尙好)이다. 부친 우덕창(禹德昌)과 모친 윤국성(尹國成)의 딸 파평윤씨(坡平尹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형으로 지족헌(知足軒) 우석간(禹錫簡)이 있다. 처부는 최윤학(崔潤學)이다.

타고난 성품이 정직하였으며, 형 우석간과 함께 경학(經學)을 공부하며 잠시도 책을 손에서 놓는 일이 없었다. 10세에 이미 19사(十九史)를 모두 다 읽었으며, 15세에는 사서오경(四書五經)은 물론 『효경(孝經)』과 『근사록(近思錄)』도 통달하였다.

1816년(순조 16) 식년시 을과 4위로 문과 급제한 후, 관직은 성균관전적(成均館典籍)‧성균사예(成均司藝)‧전라도도사(全羅道道事)‧김천찰방(金泉察訪)‧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문천군수(文川郡守) 등을 역임하였다.

김천찰방 시절에는 학문을 장려하기 위해 서재(書齋)를 세웠으며, 문천군수 시절에는 문란해진 삼정(三政)을 바로 잡았고, 더불어 강학을 위해 원우(院宇)를 수리하는 등 많은 선정을 베풀기도 하였으나, 한 때 직간으로 단양(端陽)에 유배를 갔다가 풀려나 다시 정언(正言) 등에 제수되었다.

유고로 3권 1책의 『아천집(啞川集)』이 전하는데, 주목할 작품으로 단양에 귀양 갔을 때 찾아온 사람들과 예와 학문에 대해 토론을 벌인 내용을 기록한 「적거설(謫居說)」을 비롯하여 「만학자서(晩學自序)」 등이 있다.

[참고문헌]

國朝文科榜目
啞川集
縉紳八世譜

[집필자]

이원배
수정일수정내역
2010-10-232010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