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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호(韓鎭㦿)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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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대유(大有)
생년1792(정조 16)
졸년?(미상)
시대조선후기
본관청주(淸州)
활동분야문신
한치구(韓致九)
생부한치형(韓致逈)

[상세내용]

한진호(韓鎭㦿)
1792년(정조 16)∼미상. 조선 후기 문신. 자는 대도(大道)‧대유(大有)이다. 본관은 청주(淸州)이다.

참의(參議) 구암(久庵) 한백겸(韓百謙)의 후손으로, 고조는 한종범(韓宗範)이고, 증조부는 한세장(韓世章)이며, 조부는 승지(承旨) 한광식(韓光植)이다. 부친은 한치구(韓致九)이고, 모친은 진사(進士) 유득환(柳得煥)의 딸이다. 생부 한치형(韓致逈)과 생모 권이정(權頤正)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인은 현감(縣監) 정희준(丁羲準)의 딸이다.

1823년(순조 23) 정시 문과에서 을과로 급제하였다.

1828년(순조 28) 민영훈(閔永勳)‧조석귀(趙錫龜)‧최승우(崔昇羽)‧황호민(黃浩民) 등과 함께 홍문록(弘文錄)에 선발되었고,(주1)
홍문록 선발
『순조실록』 30권, 28년 1월 25일(을축) 1번째기사.
이후 정언(正言) 등을 역임하였다.

1829년(순조 29) 심영석(沈英錫)을 두둔하는 직언을 올렸다가, 임금의 진노를 사게 되어 처분을 받았다.(주2)
심영석 관련 상소
『순조실록』 30권, 29년 7월 21일(계축) 2번째기사.
최초 진도군(珍島郡)으로 유배 처분을 받았으나, 이후 대신들이 수차례 상소를 올려서 사면이 되었다.

1832년(순조 32)에는 문호묘(文祜廟)의 제사 때 집례(執禮)를 담당하여 그 공으로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다.(주3)
통정대부 가자
『순조실록』 32권, 32년 7월 9일(계축) 1번째기사.
1840년(헌종 6)에는 사간원대사간(司諫院大司諫)에 임명되었다.(주4)
사간원대사간 임명
『헌종실록』 7권, 6년 7월 7일(을미) 1번째기사.

[참고문헌]

國朝文科榜目
문음보(文蔭譜)
純祖實錄
憲宗實錄

[집필자]

정병섭
수정일수정내역
2011-10-31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