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순(徐箕淳)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11CAE30C21CB1791X0 |
자(字) | 중구(仲裘) |
호(號) | 매원(梅園) |
시호(諡號) | 청문(淸文) |
생년 | 1791(정조 15) |
졸년 | 1854(철종 5) |
시대 | 조선후기 |
본관 | 대구(大丘)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서영보(徐榮輔) |
저서 | 『종사록(從仕錄)』 |

[상세내용]
서기순(徐箕淳)
1791년(정조 15)∼1854년(철종 5). 조선 후기의 청백리. 본관은 대구(大丘). 자는 중구(仲裘), 호는 매원(梅園). 대제학 서영보(徐榮輔)의 아들이다.
자신을 포함한 5대에 걸쳐 세 사람의 상신(相臣)과 네 사람의 대제학을 배출한 가문이다.
1827년(순조 27) 증광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여 1833년 이조참의, 1837년(헌종 3) 대사성, 1838년 이조참판을 거쳤고, 1842년 전라도관찰사가 되었다.
그뒤 한성부판윤‧대사헌‧예조판서를 거쳐 1850년(철종 1) 대제학이 되고, 1851년 병조판서, 1853년 이조판서에까지 승진하였다.
그밖에도 경상도관찰사와 판의금부사 등 청현직(淸顯職)을 두루 역임하였다.
집이 비바람을 가릴 수 없을 정도로 가난하게 살았고, 순조조의 청백리에 녹선되었다.
저서로 『종사록(從仕錄)』 1권이 있다. 시호는 청문(淸文)이다.
자신을 포함한 5대에 걸쳐 세 사람의 상신(相臣)과 네 사람의 대제학을 배출한 가문이다.
1827년(순조 27) 증광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여 1833년 이조참의, 1837년(헌종 3) 대사성, 1838년 이조참판을 거쳤고, 1842년 전라도관찰사가 되었다.
그뒤 한성부판윤‧대사헌‧예조판서를 거쳐 1850년(철종 1) 대제학이 되고, 1851년 병조판서, 1853년 이조판서에까지 승진하였다.
그밖에도 경상도관찰사와 판의금부사 등 청현직(淸顯職)을 두루 역임하였다.
집이 비바람을 가릴 수 없을 정도로 가난하게 살았고, 순조조의 청백리에 녹선되었다.
저서로 『종사록(從仕錄)』 1권이 있다. 시호는 청문(淸文)이다.
[참고문헌]
純祖實錄
憲宗實錄
哲宗實錄
國朝人物志
國朝榜目
典考大方
淸選考
憲宗實錄
哲宗實錄
國朝人物志
國朝榜目
典考大方
淸選考
[집필자]
홍순만(洪淳晩)
명 : "기순(箕淳)"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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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