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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문(朴齊聞)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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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경소(敬韶)
호(號)추재(錐齋)
생년1787(정조 11)
졸년?(미상)
시대조선후기
본관반남(潘南)
활동분야문신
박윤수(朴崙壽)

[상세내용]

박제문(朴齊聞)
1787년(정조 11)~미상. 조선 후기 문신. 자는 경소(敬韶)이고, 호는 추재(錐齋)이다. 본관은 반남(潘南)이고, 거주지는 한양이다.

증조부는 박성원(朴成源)이고, 조부는 박종규(朴宗珪)이며, 부친은 박윤수(朴崙壽)이다. 외조부는 서명기(徐命琦)이고, 처부는 조제인(趙濟仁)이다.

1809년(순조 9) 증광시 문과에 병과 19위로 급제하였고, 관직은 응교(應敎)‧경기암행어사(京畿暗行御史)‧의정부검상(議政府檢詳)‧성균관대사성(成均館大司成)‧이조참의(吏曹參議)‧사간원대사간(司諫院大司諫)‧공충도관찰사(公忠道觀察使)‧부호군(副護軍) 등을 역임하였으며, 금양군(錦陽君)에 봉해졌다.

1821년(순조 21) 임금에게 학문에 힘쓰도록 상소하였고, 1822년(순조 22) 비국(備局)에서 권돈인(權敦仁)‧김난순(金蘭淳)‧남이무(南履懋)‧박제문(朴齊聞)‧서좌보(徐左輔)‧이언순(李彦淳)‧임준상(任俊常)‧조인영(趙寅永)‧홍승규(洪勝圭)‧홍학연(洪學淵) 등과 함께 암행어사에 적합한 인물로 뽑혔다. 같은 해에 경기암행어사로 나갔다가 돌아와 지역 관리들의 선정(善政)과 악정(惡政)에 대한 정황을 장계(狀啓)하였다. 1834년(순조 34) 동지부사(冬至副使)로서 동지정사(冬至正使) 이익회(李翊會)를 도와 서장관(書狀官) 황겹(黃䅘)과 함께 청나라에 사행을 다녀왔다. 슬하에 아들 박원양(朴元陽)‧박홍양(朴弘陽)을 두었다.

[참고문헌]

國朝文科榜目純祖實錄

[집필자]

이은영
수정일수정내역
2011-10-31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