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영(李秉瑩)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774BCD1C601B1784X0 |
자(字) | 성실(聖實) |
호(號) | 천관(川觀) |
생년 | 1784(정조 8) |
졸년 | 1851(철종 2) |
시대 | 조선후기 |
본관 | 경산(京山)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상세내용]
이병영(李秉瑩)
1784년(정조 8)∼1851년(철종 2). 조선 후기 문신. 자는 성실(聖實)이고, 호는 천관(川觀)이다. 본관은 경산(京山)이고, 출신지는 경상북도 성주군(星州郡)이다.
증조부는 이덕표(李德標)이고, 조부는 이광각(李光珏)이다. 부친 이익수(李益壽)와 모친 장재전(張在田)의 딸 장씨(張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1825년(순조 25) 식년시 병과 4위로 합격한 후, 전적(典籍)과 정언(正言) 등을 거쳐 1834년(순조 34)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이 되었다. 그해 혼례(婚禮)의 사치와 조복 및 관복의 간소화에 대한 상소를 올렸는데, 반대하는 의견이 많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 후 이조정랑(吏曹正郞)을 거쳐 찰방(察訪)으로 좌천되었지만 개의치 않고 부임하였으나, 장령(掌令)에 제수되었을 때는 나아가지 않았다. 향년 68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하였다.
저서로 『천관집(川觀集)』이 전한다.
증조부는 이덕표(李德標)이고, 조부는 이광각(李光珏)이다. 부친 이익수(李益壽)와 모친 장재전(張在田)의 딸 장씨(張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1825년(순조 25) 식년시 병과 4위로 합격한 후, 전적(典籍)과 정언(正言) 등을 거쳐 1834년(순조 34)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이 되었다. 그해 혼례(婚禮)의 사치와 조복 및 관복의 간소화에 대한 상소를 올렸는데, 반대하는 의견이 많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 후 이조정랑(吏曹正郞)을 거쳐 찰방(察訪)으로 좌천되었지만 개의치 않고 부임하였으나, 장령(掌令)에 제수되었을 때는 나아가지 않았다. 향년 68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하였다.
저서로 『천관집(川觀集)』이 전한다.
[참고문헌]
國朝文科榜目
嶠南誌
嶠南誌
[집필자]
김경희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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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3 | 2010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