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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명(朴齊明)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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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경회(景晦)
생년1779(정조 3)
졸년?(미상)
시대조선후기
본관반남(潘南)
활동분야문신
박회수(朴會壽)

[상세내용]

박제명(朴齊明)
1779년(정조 3)~미상. 조선 후기 문신. 자는 경회(景晦)이다. 본관은 반남(潘南)이고, 거주지는 한양이다.

증조부는 박후원(朴厚源)이고, 조부는 박종성(朴宗聖)이며, 부친은 박회수(朴會壽)이다. 외조부는 이익빈(李翼彬)이고, 처부는 이직용(李直容)이다.

1812년(순조 12) 정시 문과에 병과 6위로 급제하였다. 관직은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교리(校理)‧동래부사(東萊府使)‧성균관대사성(成均館大司成)‧사간원대사간(司諫院大司諫)‧이조참의(吏曹參議) 등을 역임하였다.

1821년(순조 21) 지평 시절 당시 서울의 관리들이 수만 냥의 혈세를 훔치는 일도 거리낌이 없고, 지방의 관리들은 관청의 기물을 사사로이 수천 냥에 달하도록 쓰는 등 비리가 심각한 지경에 이르러 백성들의 고통이 날로 힘들어지자 이에 대해 바로잡아줄 것을 청하는 상소를 올렸다. 1827년(순조 27) 임금이 친히 태조의 무덤인 건원릉(健元陵)에서 제사를 지낼 때 집례(執禮)를 맡아 통정대부(通政大夫)에 가자되었다. 1832년(순조 32) 동래부사 시절 왜관(倭館) 중 하나인 서관(西館)을 수리하기 위해 일본의 사신이 오는 것을 다섯 차례나 막자, 이 일을 항의하기 위해 대마도(對馬島)의 봉행왜(奉行倭)가 서계(書契)를 보내오자 물리치고 받지 않았다.

[참고문헌]

國朝文科榜目
純祖實錄
憲宗實錄

[집필자]

이은영
수정일수정내역
2011-10-31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