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학연(洪學淵)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D64DD559C5F0B1777X0 |
자(字) | 계습(季習) |
호(號) | 임간(林磵) |
생년 | 1777(정조 1) |
졸년 | 1852(철종 3) |
시대 | 조선후기 |
본관 | 남양(南陽[唐])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홍경안(洪景顔) |
[관련정보]
[상세내용]
홍학연(洪學淵)
1777년(정조 1)∼1852년(철종 3).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남양(南陽[唐]). 자는 계습(季習), 호는 임간(林磵).
승지 홍경안(洪景顔)의 아들이다.
1813년(순조 13) 진사로서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 여러 벼슬을 거쳐 강원도암행어사로 나갔다.
1835년(헌종 1) 대사성을 거쳐 공조참의‧이조참판‧도승지 등을 역임하고, 1845년 대사헌에 이르렀다. 이어 광주부유수(廣州府留守)에 이르러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다.
1850년(철종 1) 지경연사(知經筵事)‧지춘추관사(知春秋館事)‧도총관이 되고, 이듬해 공조판서를 역임하였다. 역대의 사적(事蹟)과 국조(國朝)의 전장(典章)에 널리 통하였고, 서예‧산수(算數)‧문학‧법리(法理) 등에도 능하였다.
승지 홍경안(洪景顔)의 아들이다.
1813년(순조 13) 진사로서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 여러 벼슬을 거쳐 강원도암행어사로 나갔다.
1835년(헌종 1) 대사성을 거쳐 공조참의‧이조참판‧도승지 등을 역임하고, 1845년 대사헌에 이르렀다. 이어 광주부유수(廣州府留守)에 이르러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다.
1850년(철종 1) 지경연사(知經筵事)‧지춘추관사(知春秋館事)‧도총관이 되고, 이듬해 공조판서를 역임하였다. 역대의 사적(事蹟)과 국조(國朝)의 전장(典章)에 널리 통하였고, 서예‧산수(算數)‧문학‧법리(法理) 등에도 능하였다.
[참고문헌]
純祖實錄
憲宗實錄
哲宗實錄
國朝榜目
經山集
憲宗實錄
哲宗實錄
國朝榜目
經山集
[집필자]
이원균(李源鈞)
대표명 | 홍학연(洪學淵) |
성명 | 홍학연(洪學淵) |
성명 : "홍학연(洪學淵)"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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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