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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수(鄭觀綏)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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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국빈(國賓)
생년1775(영조 51)
졸년1820(순조 20)
시대조선후기
본관동래(東萊)
활동분야문신
정존대(鄭存大)
생부정존양(鄭存養)

[상세내용]

정관수(鄭觀綏)
1775년(영조 51)~1820년(순조 20) 조선 후기 문신. 자는 국빈(國賓)이다. 본관은 동래(東萊)이고, 출신지는 서울이다.

증조부는 형조판서(刑曹判書) 정형복(鄭亨復)이고, 조부는 예조판서(禮曹判書) 정일상(鄭一祥)이며, 부친 정존양(鄭存養)의 4남으로 태어나 정존대(鄭存大)에게 입양(入養)되었다. 외조부는 김기환(金箕煥)이고, 생외조부는 김재원(金載元)이다.

1803년(순조 3) 계해 증광시(增廣試)에 생원으로 합격하였고, 같은 해 계해 증광시 문과(文科)에 급제(及第) 하였다.

벼슬은 1805년(순조 5) 한림회권(翰林會圈)에 들어 한림소시(翰林召試)에 뽑혔다. 1807년(순조 7) 사관(史官)을 거쳐 이듬해 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이 되었다.

1809년(순조 9) 홍문록(弘文錄 )에 들고, 1810년 사간원대사간(司諫院大司諫)이 되었다. 1815년(순조 15) 이조참의(吏曹參議)를 거쳐 다시 사간원대사간, 다시 이조참의를 역임하였다.

[참고문헌]


[집필자]

정원종(鄭源宗)
수정일수정내역
2011-10-31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