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치겸(尹致謙)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724CE58ACB8B1772X0 |
자(字) | 중익(仲益) |
생년 | 1772(영조 48) |
졸년 | ?(미상) |
시대 | 조선후기 |
본관 | 해평(海平) |
활동분야 | 문신 |
부 | 윤양열(尹陽烈) |
생부 | 윤형열(尹馨烈) |
[상세내용]
윤치겸(尹致謙)
1772년(영조 48)∼미상. 조선 후기 문신. 자는 중익(仲益)이다. 본관은 해평(海平)이다.
현감(縣監) 윤세휴(尹世休)의 후손으로, 고조는 현감 윤상명(尹商明)이고, 증조부는 대사헌(大司憲) 윤득화(尹得和)이며, 조부는 진사 윤헌동(尹憲東)이다. 부친은 윤양열(尹陽烈)이고, 모친은 현감 박행원(朴行源)의 딸이다. 생부 윤형열(尹馨烈)과 생모 진사 노언항(盧彦恒)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인은 송영진(宋永鎭)의 딸이다.
1807년(순조 7) 식년시 문과에서 장원으로 급제하였다. 이후 정언(正言)에 임명되었으며, 김종수(金鍾秀)의 위패를 없애고 대관(大官)의 관직을 삭제할 것을 건의하기도 하였다. 그 외에도 관리들의 잘못을 지적하며 직간을 서슴지 않았다.
1822년(순조 22) 왕세자의 홍역 증세가 회복된 경사를 맞아 선교관(宣敎官)으로서 하례(賀禮)에 참여한 공로로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다. 1837년(헌종 3)에는 사간원대사간(司諫院大司諫)에 임명되었다. 이후 병조참판(兵曹參判)‧한성부판윤(漢城府判尹)‧형조판서(刑曹判書) 등을 역임하였다.
현감(縣監) 윤세휴(尹世休)의 후손으로, 고조는 현감 윤상명(尹商明)이고, 증조부는 대사헌(大司憲) 윤득화(尹得和)이며, 조부는 진사 윤헌동(尹憲東)이다. 부친은 윤양열(尹陽烈)이고, 모친은 현감 박행원(朴行源)의 딸이다. 생부 윤형열(尹馨烈)과 생모 진사 노언항(盧彦恒)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인은 송영진(宋永鎭)의 딸이다.
1807년(순조 7) 식년시 문과에서 장원으로 급제하였다. 이후 정언(正言)에 임명되었으며, 김종수(金鍾秀)의 위패를 없애고 대관(大官)의 관직을 삭제할 것을 건의하기도 하였다. 그 외에도 관리들의 잘못을 지적하며 직간을 서슴지 않았다.
1822년(순조 22) 왕세자의 홍역 증세가 회복된 경사를 맞아 선교관(宣敎官)으로서 하례(賀禮)에 참여한 공로로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다. 1837년(헌종 3)에는 사간원대사간(司諫院大司諫)에 임명되었다. 이후 병조참판(兵曹參判)‧한성부판윤(漢城府判尹)‧형조판서(刑曹判書) 등을 역임하였다.
[참고문헌]
國朝文科榜目純祖實錄
縉紳八世譜
哲宗實錄
憲宗實錄
縉紳八世譜
哲宗實錄
憲宗實錄
[집필자]
정병섭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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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31 | 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