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치검색 표제어 전체
검색
김재창(金在昌)

[요약정보]

UCIG002+AKS-KHF_13AE40C7ACCC3DB1770X0
자(字)덕여(德汝)
호(號)향포(香圃)
시호(諡號)정간(貞簡)
생년1770(영조 46)
졸년1849(헌종 15)
시대조선후기
본관광산(光山)
활동분야문신 > 문신
김기성(金箕性)
외조부장헌세자(莊獻世子)

[상세내용]

김재창(金在昌)
1770년(영조 46)∼1849년(헌종 15).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덕여(德汝), 호는 향포(香圃).

부친은 광은부위(光恩副尉) 김기성(金箕性)이며, 모친은 장헌세자(莊獻世子)의 서녀(庶女)이다.

1801년(순조 1) 고양군수로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부수찬이 되고 1806년 승지대사성을 거쳐 1809년 경기도관찰사가 되었다. 관찰사 재직시 지평현의 서리 방복항(方福恒)이 1만여석을 포흠하매 이에 대한 책임을 물어 영의정 김재찬(金載瓚)의 파직을 주장하였다. 이해 한성부판윤을 거쳐 1811년 다시 성균관대사성이 되었다.

1814년 형조판서대사헌지돈녕이 되었다가 1816년 판의금부사, 이듬해 공조판서를 거쳐 광주부유수로 좌천된 적도 있다.

1821년 병조판서, 1826년 형조판서이조판서가 되고 1830년 원접사가 되었다가, 1835년(헌종 1) 병조판서가 되었다. 병조판서를 지내던 중, 정시무과 초시의 시험날짜를 통지하지 못하여 지방무사들이 응시하지 못한 책임으로 한때 파면되기도 하였다.

1837년 이조판서로 복직되고, 1843년에는 판중추부사가 되었다. 편서로는 『광주부공도회과작(廣州府公都會科作)』이 있다. 시호는 정간(貞簡)이다.

[참고문헌]

純祖實錄
憲宗實錄
國朝榜目

[집필자]

김일기(金馹起)
대표명김재창(金在昌)
재창(在昌)
성명김재창(金在昌)

명 : "재창(在昌)"에 대한 용례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2010-04-04이학수(李鶴秀) 撰 輔國崇祿大夫判中樞府事兼吏曹判書判義禁府事知經筵春秋館事五衛都摠府都摠管世子右賓客金公諡狀을 참고하여 졸년 1849(헌종 15 기유) 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