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문백(任文白)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784BB38BC31B1769X0 |
자(字) | 욱재(郁哉) |
생년 | 1769(영조 45) |
졸년 | ?(미상) |
시대 | 조선후기 |
본관 | 풍천(豊川) |
활동분야 | 문신 |
부 | 임시집(任時集) |
[상세내용]
임문백(任文白)
1769년(영조 45)~미상. 조선 후기 문신. 자는 욱재(郁哉)이다. 본관은 풍천(豊川)이다.
감사(監司) 임내신(任鼐臣)의 후손으로, 고조는 임홍정(任弘挺)이고, 증조부는 정랑(正郞) 임경(任敬)이며, 조부는 사과(司果) 임진하(任震夏)이다. 부친 임시집(任時集)과 모친 도총(都摠) 심익성(沈益聖)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인은 대간(大諫) 유악주(兪岳柱)의 딸이다.
1807년(순조 7) 식년시 문과에서 병과 28위로 급제하였다.
1813년(순조 13) 지평(持平)으로 재직 중이었는데, 김계락(金啓洛)‧서영보(徐榮輔) 등이 중요한 직위에 있으면서도 소임을 다하지 않고, 제 마음대로 행동한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탄핵하였다. 1817년(순조 17) 강진현감(康津縣監)으로 재직 중, 대동미(大同米)를 미납했다는 내용으로 탄핵을 당하였고, 1827년(순조 27)에는 임금과 중궁전이 존호(尊號)와 책보(冊寶)를 받는 경사에 우통례(右通禮)의 소임을 수행하여 그 공로로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다. 1833년(순조 33)에는 사간원대사간(司諫院大司諫)에 임명되었는데, 경상우병영(慶尙右兵營)에 화재가 발생했을 때 임금에게 자세한 정황을 조사하여 진실을 규명할 것을 건의하였다.
감사(監司) 임내신(任鼐臣)의 후손으로, 고조는 임홍정(任弘挺)이고, 증조부는 정랑(正郞) 임경(任敬)이며, 조부는 사과(司果) 임진하(任震夏)이다. 부친 임시집(任時集)과 모친 도총(都摠) 심익성(沈益聖)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인은 대간(大諫) 유악주(兪岳柱)의 딸이다.
1807년(순조 7) 식년시 문과에서 병과 28위로 급제하였다.
1813년(순조 13) 지평(持平)으로 재직 중이었는데, 김계락(金啓洛)‧서영보(徐榮輔) 등이 중요한 직위에 있으면서도 소임을 다하지 않고, 제 마음대로 행동한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탄핵하였다. 1817년(순조 17) 강진현감(康津縣監)으로 재직 중, 대동미(大同米)를 미납했다는 내용으로 탄핵을 당하였고, 1827년(순조 27)에는 임금과 중궁전이 존호(尊號)와 책보(冊寶)를 받는 경사에 우통례(右通禮)의 소임을 수행하여 그 공로로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다. 1833년(순조 33)에는 사간원대사간(司諫院大司諫)에 임명되었는데, 경상우병영(慶尙右兵營)에 화재가 발생했을 때 임금에게 자세한 정황을 조사하여 진실을 규명할 것을 건의하였다.
[참고문헌]
國朝榜目
文蔭譜
純祖實錄
文蔭譜
純祖實錄
[집필자]
정병섭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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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31 | 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