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치복(閔致福)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BBFCCE58BCF5B1766X0 |
자(字) | 원리(元履) |
호(號) | 확재(擴齋) |
생년 | 1766(영조 42) |
졸년 | 1814(순조 14) |
시대 | 조선후기 |
본관 | 여흥(驪興)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민종현(閔鍾顯) |
[상세내용]
민치복(閔致福)
1766년(영조 42)∼1814년(순조 14).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원리(元履), 호는 확재(擴齋).
이조판서 민종현(閔鍾顯)의 아들이다. 김양행(金亮行)‧이직보(李直輔)의 문인이다. 어릴 때부터 『소학』에 통달하고 여러 서적을 탐독하여 안목이 뛰어났으며, 본 것은 모두 기억하거나 외웠다고 한다.
1789년(정조 13) 사마시에 합격, 1803년 원릉참봉(元陵參奉)이 되었으나 조그만 잘못으로 파직되었다.
그러나 곧 복직되어 1805년 동몽교관(童蒙敎官)을 지낸 뒤 빙고별제(氷庫別提)와 호조‧공조‧형조의 낭관(郞官)을 거쳐 남평현감에 이르렀으나 병으로 관직을 물러났다.
시문에 능하였으며 문장에 힘이 있었고, 유저 몇 권이 있다.
이조판서 민종현(閔鍾顯)의 아들이다. 김양행(金亮行)‧이직보(李直輔)의 문인이다. 어릴 때부터 『소학』에 통달하고 여러 서적을 탐독하여 안목이 뛰어났으며, 본 것은 모두 기억하거나 외웠다고 한다.
1789년(정조 13) 사마시에 합격, 1803년 원릉참봉(元陵參奉)이 되었으나 조그만 잘못으로 파직되었다.
그러나 곧 복직되어 1805년 동몽교관(童蒙敎官)을 지낸 뒤 빙고별제(氷庫別提)와 호조‧공조‧형조의 낭관(郞官)을 거쳐 남평현감에 이르렀으나 병으로 관직을 물러났다.
시문에 능하였으며 문장에 힘이 있었고, 유저 몇 권이 있다.
[참고문헌]
日省錄
老洲集
老洲集
[집필자]
김일기(金馹起)
대표명 | 민치복(閔致福) |
성명 | 민치복(閔致福) |
성명 : "민치복(閔致福)"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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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